12, 13일 임시공휴일 루머 확산
정부는 근거 없다고 밝혔지만
지레 기대, 불만 엇갈리며 혼란
2년째 원칙 없는 지정 후폭풍
“갑자기 발표하니 기다려 볼 작정”
“생산직은 일정 조정 쉽게 못해”
“청와대 내부적으로 추석연휴 월ㆍ화요일을 임시공휴일 지정 검토 중.”
직장인 박모(28ㆍ여)씨는 최근 카카오톡을 통해 이런 사설정보 메시지를 받고 희망에 부풀었다. 공식적인 추석 연휴인 14~17일에 12,13일까지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 9일짜리 황금 휴가를 즐기는 셈이어서 여름휴가 후유증까지 털어낼 참이었다. 그러나 뒤따라 유포된 정보에는 “추석연휴를 임시공휴일로 정한다는 괴소문에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고 적혀 있었다. 박씨는 2일 “근거 없는 루머에 휘둘린 기분이지만 정부가 지난 5월처럼 징검다리 연휴에 임시공휴일을 갑자기 지정할 수도 있어 기다려 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직장인들이 또 다시 임시공휴일 희망고문에 시달리고 있다. 소문만 무성하다가 불과 일주일 전 갑자기 휴일로 정해졌던 지난해 광복절과 올해 어린이날 경험이 일종의 학습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휴일 횡재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을수록 한 편에선 ‘못 쉬는 사람은 어차피 못 쉰다’는 회의론도 커져 혼란만 가중되는 모양새다.
임시공휴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심리의 배경에는 열악한 노동환경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6 고용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자의 연간 평균 노동시간(2,113시간)은 멕시코(2,246시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유럽에서나 가능한 2주, 한달짜리 장기휴가는 그림의 떡인 셈이다. 정부가 주는 연차나 다름없는 임시공휴일과 관련해 각종 풍문이 떠도는 것도 이 때문이다. 회사원 이모(31)씨는 “눈치 안보고 열흘 가까이 쉴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아 공휴일 지정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중의 기대감을 먹고 크는 루머가 확산되는 것은 한국 노동자들의 휴식 욕구가 그만큼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임시공휴일에 대해 일관성 없는 정부의 태도는 불필요한 혼란을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정부는 지난달 29일 추석 민생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9월 12,13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얘기가 떠돈다고는 들었다. 앞으로 검토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확답을 피했다. 맞벌이 부부인 성모(40)씨는 “올해 어린이날에도 갑자기 임시공휴일이 지정돼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어려움을 겪었다”며 “정부가 억측이 불거지기 전 빨리 가부를 결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거듭되는 임시공휴일 논란이 상대적 박탈감만 조장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어차피 휴일이 지정돼도 모든 노동자가 쉬지 못하는 데다 업무 부담만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프리랜서 언어재활사인 김모(31ㆍ여)씨는 “임시공휴일로 병원이 휴업하면 강제 휴무를 해야 하는 처지라 달갑지 않다. 연휴가 끝나면 잔업만 늘어날 것”이라고 불평했다. 이원섭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중소기업들은 임시공휴일이 정해져도 인력이 부족해 당장 휴무 일정을 조정하기 어렵다”며 “생산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생산량이나 매출에도 타격이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연휴를 다 쉬지 못하는 생산직을 배려해 사무직 사원들에게도 12,13일 연차사용은 자제하라고 주문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시공휴일이 여론의 지지를 받는 정책으로 정착되려면 수요와 공급을 고려한, 보다 면밀한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임시공휴일이 장기적인 검토 없이 임의로 지정되다 보니 쉴 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반영될 가능성이 커 정책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며 “최소한 1년 전부터 여론을 수집해 휴일 지정에 따른 불확실성을 걷어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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