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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형의 화양연화] 야생화처럼 피어있는 삶

입력
2016.09.02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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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 오르고 싶었다. 꼭대기까지 오르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설산이 그려낸 장엄한 풍광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걷고 싶었다. 산악인이 아니라도 히말라야에 오를 수 있다는 말은 그곳에 닿고 싶은 희망을 품게 했다. 걷고 또 걸으면서 건강한 땀을 흘리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 보면 무뎌진 감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끝없이 이어진 길
끝없이 이어진 길

히말라야는 배신하지 않았다.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온몸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으셨는지, 신은 엄청난 비도 내려주셨다. 비 맞은 생쥐가 된 채 빗속을 걸었지만, 오랜만에 심장이, 발바닥이, 피부가 제대로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초록빛 자연은 내가 뿜어내는 독소를 마다치 않았다. 그리곤 시원하고 맑은 숨을 넣어줬다. 히말라야의 에너지로 회색빛 몸과 마음이 투명하게 변하는 것 같았다.

산에 오를수록 서울에서의 삶이 아득해졌다.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서울에서 어떻게 살았나 싶었다. 서울에 두고 온 큰 근심거리는 멀리 떨어져 있었다. 오히려 당장 종아리를 타고 오르는 거머리와의 사투가 더 문제였다. 근사한 요리가 아닌, 당장 허기를 채울 감자 한 알이 필요했다. 추위를 녹여줄 따뜻한 물 한 잔이 고마웠다. 평소에 지나치고 살았던 사소한 것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온통 감사할 것들이었다. 마음속 큰 고민은 한걸음 달아나 있었다. 순간에 충실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떨어져서 바라 볼 것. 히말라야는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려줬다. 겨우 살아내던 서울에서의 일상도 ‘작든 크든, 모든 순간이 나의 삶이구나’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히말라야를 삼켜버릴 것처럼 내리는 비 때문에, 예정하지 않은 산장에 머물렀다.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꼬마와 엄마처럼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란히 서서 반갑게 맞아주었다. 물꼬기 꼬리처럼 생긴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잘 보이는 위치에 있는 아담한 산장이었다. 안개에 싸여 신령스러운 모습을 감상하며 밀린 일기를 쓰고 있었다. 꼬마가 수줍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자기 이름은 리사, 열한 살이란다. 리사는 산장 주인의 딸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아이였다. 깜짝 놀라 산장 주인에게 물어보니, 리사가 번 돈으로 리사 가족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일하느라 학교는 언감생심이었다. 열한 살의 나이에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가혹했다. 안타깝고 미안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사는 환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리곤 밝은 얼굴로 영어책을 가져와서 가르쳐 줄 수 있는지 씩씩하게 물었다. 산장에서의 기억은 리사와 그림을 그리고 단어를 함께 읽으며 감자를 까먹던 추억으로 채워졌다.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히말라야의 작은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

세상 곳곳을 떠돌다 보면 여러 모습을 만난다. 히말라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털이 덥수룩한 야크를 몰고 가는 사람들, 홍수로 쓰러진 나무를 넘어서 집으로 돌아가던 가족, 더러워진 교복을 입고서 손을 흔들어주는 꼬마, 닭을 쫓아다니면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 꽃을 피우는 아주머니들, ‘미타이(달콤한 사탕 같은 것)’를 외치며 달려드는 어린아이들. 히말라야에 오르지 않았으면 만나지 못했을 다양하고 예쁜 삶들이 여기저기 야생화처럼 피어 있었다.

따뜻하게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아이들
따뜻하게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아이들

그들이 참 고마웠다. 인생이란 비장해야 하고 거대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쉼 없이 달려야 한다고 여겼다. 왜 달리는지 모르지만 다른 이들과 속도를 맞춰야 할 것 같았다. 사람들의 속도도 다르고 걸어가는 길의 경사도 방향도 모두 다른데. 왜 나의 길을 가는 것에 더 힘을 쓰지 않고 남의 길을 흘끗거렸던 것인지, 왜 토끼의 속도를 탐냈었는지. 히말라야에 야생화처럼 핀 사람들을 보면서 내 안의 순수를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숨 쉬고 있는 것, 살고 있는 것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떠올렸다.

세상에는 수많은 꽃이 있다. 활짝 피는 꽃도 있고 잠깐 피다 지는 꽃도 있다. 길거리에 핀 수많은 꽃의 이름을 모두 알 수는 없지만 모두 나름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우리의 삶은 모두 아름답고 의미 있는 것.

채지형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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