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사 80억 집행내역 요구에
뒤늦게 “보안장치ㆍ백신 구입”
정작 가맹점들은 설치 못해
카드사 “불투명… 확인 방법 없어”

카드 결제 과정의 보안 강화를 위해 카드사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의 행방을 둘러싸고 요즘 카드업계가 시끄럽습니다. 카드사들은 이 돈을 집행한 여신금융협회의 투명성에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여신협회는 카드사들이 과도한 의심으로 분란을 일으킨다고 맞섭니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걸까요.
갈등의 발단은 지난달 19일 여신협회에서 열린 회의였습니다. 참석한 카드사 실무 담당자들이 2011년 카드 단말기 보안강화 명목으로 갹출했던 기금 80억원의 집행내역을 요구했는데, 웬일인지 여신협회는 “예산 대부분을 단말기 보안장치 구입에 썼다”고만 하고는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10억원 넘는 돈이 장부에 누락돼 사라졌다는 소문이 돌아 확인을 요청한 건데, 황당했다”는 게 한 카드사 관계자의 전언입니다.
자초지종을 묻자 여신협회는 1일 “80억원 중 62억원을 영세 가맹점들의 기존(POS 방식) 단말기에 붙일 암호화 보안장치 구입에 썼다”고 뒤늦게 밝혔습니다. 그런데 영세 가맹점들은 정작 이 보안장치를 아직 구경도 못했다네요. 2013년 금융당국이 집적회로(IC) 카드 결제 방식으로 단말기를 업그레이드하도록 정책을 바꾸면서 이미 주문했던 보안장치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겁니다. 협회는 이후 보안장치 제작업체에 읍소해 IC카드 결제용 보안장치로 전부 교체했는데, 2014년 초 카드사 정보유출 사고로 금융당국이 또 모든 단말기에 국제보안표준(EMV) 인증을 의무화하면서 교체한 보안장치에 또 다른 인증이 필요해져 보급이 늦어졌다는 겁니다.
카드사들은 나머지 18억원의 용처도 석연치 않아 합니다. 여신협회는 이날 오후에야 겨우 “18억원은 2011년부터 2년간 단말기 해킹을 막는 백신프로그램 설치에 썼다”고 추가로 해명했습니다. 프로그램 설치를 맡은 결제대행업체(VAN사)가 확인서를 협회에 제출하면 대금을 지불했는데, 이 비용이 대략 18억원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정작 이 프로그램도 오작동이 잦아 대다수 가맹점은 설치하지 않았다는군요.
여신협회의 이런 해명에도 카드사들의 불신은 그대로인 분위기입니다. “협회가 각종 기금 사용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금융당국 감사를 받지 않는 한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카드사들의 불만입니다. 반면 협회는 “남는 기금을 회원사에게 돌려주도록 돼 있는데, 이를 돌려 받으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카드사들이 낸 기금이 세금까지는 아닙니다만 결국 이런 비용은 소비자의 카드사용 요금에 반영될 겁니다. 이번 기회에 금융사들의 기금으로 마련되는 각 금융협회의 특별회비 사용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건 어떨까요.
강지원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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