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조원에 달하는 나랏돈 지출의 적정성을 따질 시간을 충분히 갖겠다는 취지로 국회의 예산안 심의기간이 1개월이나 연장됐지만, 정작 국회는 정쟁 등으로 예산안을 방치하다 막판에야 시간에 쫓겨 예산을 졸속 처리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까지 고쳐 가며 심의 기간을 늘린 취지를 전혀 살리지 못하는 셈이다.
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 예산안은 2013년 개정된 국가재정법에 따라 법 개정 전보다 30일 당겨진 9월2일까지 국회에 제출돼야 한다. 바뀐 국가재정법은 2014년부터 3년에 걸쳐 정부 예산안의 국회제출 시한을 1년에 열흘씩(총 30일) 앞당기도록 하고 있다. 국회의 헌법상 권한인 예산 심의권을 충분히 보장해 주자는 것이다. 실제 2014년 예산안은 2013년 10월 2일, 2015년 예산안은 2014년 9월 22일, 2016년 예산안은 지난해 9월 11일 제출됐다. 이에 따라 기존에 60일이었던 국회의 심의 기간은 현재 90일로 늘어났다.
문제는 법 개정으로 충분한 시간을 번 국회가 그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올해 예산안의 경우 지난해 9월 11일에 국회에 제출됐지만, 추석 때문에 두 차례로 나눠 열린 국정감사가 10월 8일 끝난 뒤 국회는 10월 19일에야 예비 심사를 위한 일부 상임위원회를 가동했고, 본격 심사를 위한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10월 26일에 열었다. 예산 심의가 시작되고서도 관광진흥법 개정안 등 5개 쟁점법안에 대한 여야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표류했고, 결국 예산안은 법정시한인 12월 2일 자정을 48분 넘기고서야 통과됐다. 예산당국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도 정부가 제출한 뒤 한 달은 지나야 심의가 시작됐는데, 일정이 길어지자 더 미적거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2015년 예산안도 마찬가지였다. 정부가 예산안을 제출(2014년 9월 25일)한 지 한달 여 만인 10월 28일에 상임위가 가동됐고, 예결위는 30일에 시작됐다. 이 같은 늑장심의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법제연구원에 따르면 2003~2010년 예결위가 예산 심의를 한 실제 일수는 평균 18.9일에 불과하다.
상대적으로 예산편성기간이 줄어든 정부에서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예산당국 관계자는 “모든 일정을 한 달씩 당기고, 그것도 모자라 자체심의 기간을 줄이거나 휴일근무로 채워가며 억지로 제출시한을 맞추고 있다”라며 “예산이 매년 10조원 가까이 늘지만 인원은 그대로고 일정까지 당겨져 직원들 피로도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편성 기간이 줄어들어 여유가 없다 보니 꼼꼼하게 본다고 해도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국회 심의절차 효율성을 강화해 심의기간 연장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9월 국회일정 대부분을 차지하는 국정감사 시기를 조정하거나 상임위 상설화 등으로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상임위가 민원성 예산을 증액하는 데만 골몰하다 보니, 예결위가 다시 개별 사업을 심사하는데 시간을 낭비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는 “거시적인 것은 예결위에서, 미시적인 것은 상임위에서 보는 것으로 역할을 분명히 해야 심의기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백웅기 상명대 교수는 “스웨덴의 경우처럼 상반기에 예산총량을 정한 뒤 하반기에 세부항목을 정하는 방식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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