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보복 기소 인정
법원이 ‘국가정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36)씨의 대북 송금 사건 항소심에서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밝혔다. 유씨가 국정원 직원들의 간첩 증거 조작을 고소하면서 검사들까지 징계를 받게 되자, 검찰이 ‘보복 기소’를 했다고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5부(부장 윤준)는 1일 외국환거래법 위반과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유씨의 항소심에서 “검찰의 공소권 남용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며 외국환거래법 위반에 대한 공소를 기각했다. 항소심은 유씨에게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만 유죄로 인정해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1심 판단을 깨고 벌금 700만원을 주문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사건을 기소한 것은 통상적이거나 적정한 소추재량권(기소 여부의 결정권) 행사라고 보기 어렵다”며 “의도가 있다고 보이므로 공소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평가함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유씨는 탈북자들의 대북 송금을 주선해주는 사업(프로돈)을 통해 13여억원을 북한으로 밀반출한 혐의(외국환거래법 위반)로 2014년 5월 기소됐다. 또 중국 국적을 갖고 있음에도 국적을 속여 우리나라 공무원 시험에 응시해 탈북자 정착금을 부당하게 받은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도 받았다.
앞서 2009년에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은 2010년 3월 29일 “유씨가 초범이고 탈북한 대학생으로서 예금계좌를 빌려줘 환치기 영업을 하도록 도운 것으로 범행 가담 정도가 경미하고, 그 경위가 참작할 만하며 깊이 뉘우치고 있다”며 기소 유예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검찰의 태도는 4년 만에 돌변했다. 2014년 1월 유씨가 국정원이 자신을 간첩이라고 주장한 증거를 조작했다며 국정원 직원들과 검사들을 고소하고, 같은 해 5월 공판 검사들이 징계를 받자 불과 8일 뒤 유씨에 대한 기소가 이뤄졌다. 때문에 당시 ‘보복 기소’라는 비판이 거세게 일었다.
1심은 ‘검찰의 공소권 남용’을 인정하지 않았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배심원 7명 중 4명이 검찰이 공소권을 남용했다고 판단했음에도 재판부는 “기초 (공소)사실이 바뀌어서 기소할 필요가 생겼다면 자의적인 기소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1심 재판부 논리를 깼다. 2심 재판부는 “검찰이 4년 전 기소유예 처분을 번복하고 공소를 제기했어야만 할 의미 있는 사정 변경은 없다”고 검찰을 비판했다. 이어 “재수사 단서가 됐다는 (보수단체 회원) 박모씨의 고발은 각하됐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검찰의 공소권 남용 인정에 관한 대법원의 2001년 판례를 들어 “유씨가 실질적인 불이익을 받았음이 명백하므로 소추재량권을 현저히 일탈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유씨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으로 기소됐으나 지난해 10월 대법원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중국 국적을 숨기고 탈북자 지원금과 여권을 받은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민변은 논평을 내고 “유씨에 대한 검찰의 추가 기소는 정의의 실현과는 무관한 보복성 기소였음이 항소심에서 확인됐다”며 “이번 판결은 형사법 역사에 큰 이정표를 세울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검찰이 정치 사건과 국가안보 사안에서 의도와 목적을 지닌 기소를 일삼았다는 의혹을 증명한 것”이라며 검찰을 비판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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