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첫 정기국회가 개회부터 파행했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퇴진과 정부의 일방적 사드 배치결정 비판 등 정치 현안을 작심하고 언급한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에 중립 위반이라며 반발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퇴장으로 국회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여야가 합의와 파기를 반복한 끝에 어렵사리 절충한 추가경정 예산안도 이 여파에 뒷전으로 밀렸다. 여야가 협치 의지를 앞세워 출범시킨 20대 국회가 3개월 만에 반목과 갈등의 장으로 되돌아왔으니 딱한 노릇이다.
정 의장의 발언은 개인 자격으로야 충분히 밝힐 만한 내용이고, 공감할 부분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의장은 여야의 이해를 중재, 조정하는 자리다. 공정성에 대해 여야 모두의 신뢰를 얻지 않으면 안 된다. 가치를 부여하는 관점이 다른 여야를 두루 살펴 공적 언행에 신중해야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국회의장이 날치기에 앞장서서 국회 마비가 빚어진 경우는 있었지만, 개회사 때문에 파행으로 치달은 경우는 없었다. 다만 정 의장의 개회사가 설사 중립성에서 벗어났다 하더라도 여당의 처신 또한 지나치다. 유감 표명 요구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사안인데도 퇴장해 추경안 처리를 미루는가 하면 의사일정 통째 보이콧까지 들먹이는 과잉 반응은 야당 출신 의장 길들이기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나아가 협치는 온데간데 없고 당리당략에 치우친 여야의 모습은 내년 예산안과 경제ㆍ노동 개혁 등 겹겹이 쌓인 국정 현안과 입법 과제에 비춰 정기국회가 얼마나 성과를 낼 수 있을지 걱정부터 들게 한다. 사상 처음으로 400조원을 넘은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시한 내 처리조차 불투명하다는 전망이 벌써부터 잇따른다. 추경안만 해도 두 차례 합의 끝에 시한을 넘겨 타결을 봤다. 야당은 교육시설 예산 추가편성 등의 관철을 두고 추경 사상 최대 성과라고 자찬하지만, 상임위 합의 처리 관행 파괴와 국민과의 약속을 어긴 데 대한 부끄러움을 되돌아보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여당은 합의 파기를 부른 청문회 증인 채택 등에서 방패막이 역할에 머문 허물을 외면한 채 기고만장하다는 거친 말로 야당을 비난하고나 있는 형편이다. 상호 신뢰와 배려, 신의성실을 찾아보기 어려운 여야 공통의 한심한 태도다.
여소야대와 3당 체제라는 살얼음판 위의 20대 국회가 이런 좌충우돌과 파행으로 치닫다가는 19대를 능가하는 식물국회가 될 게 뻔하다. 안팎으로 위기인 나라 형편을 생각한다면 여야가 어느 때보다 대국적 견지에서 현안을 다뤄야 하지 않겠는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