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호에 1억7000만원 받은 혐의
檢 “심리상태 불안정” 긴급체포
“판사답게 잘못 시인해야 했는데
극구 부인하다 이리 되니 배신감”
정운호(51ㆍ구속기소)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측으로부터 금품 및 향응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수도권 지방법원 김모(57) 부장판사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현직 판사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사채왕 금품수수’ 사건으로 징역 3년이 확정된 최민호 전 판사 이후 1년 7개월만으로, 사법부는 또다시 충격에 빠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이원석)는 1일 정 전 대표의 상습도박 사건 재판 관련 청탁명목 등으로 정 전 대표 측으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1억7,000여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 등)로 김 부장판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전날 오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던 김 부장판사가 “(검찰 수사 임박 후) 극단적인 선택도 고려했다”는 취지로 진술하면서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보이자 불가피하게 1일 새벽 2시30분쯤 긴급 체포했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2014년 정 전 대표 소유의 스포츠유틸리티(SUV)차량 레인지로버 중고차를 시세보다 2,000만원 저렴하게 구입한 후 가족 명의 계좌로 차값을 되돌려 받은 혐의 등 대부분의 범죄 사실에 대해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장판사는 베트남 여행을 하며 동행한 정 전 대표에게 여행경비 대부분을 지급하게 하고 정 전 대표 측이 발행한 100만원권 수표 5, 6장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정 전 대표로부터 상습도박 사건 처리의 선처를 부탁해 달라는 청탁과 가짜 네이처리퍼블릭 판매업자들을 엄벌해 달라는 청탁을 하며 두 차례에 걸쳐 9,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로 서울 강남 B성형외과 원장 이모(52)씨를 지난 달 31일 구속 기소했다.
김 부장판사의 긴급 체포 및 구속영장 청구 소식이 전해진 1일 사법부는 패닉에 빠졌다. 김 부장판사와 정 전 대표의 유착 의혹이 불거진 올 4월 말 이후 검찰 수사를 초조하게 지켜본 법원은 비위 사실이 구체화되자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고, 당사자의 거짓 해명에 대해 배신감도 표했다.
인품 좋은 법관으로 인식됐던 김 부장판사가 법정에 설 처지가 되자 동료 판사들은 탄식했다. 서울 소재 법원의 A 판사는 “25년간 법복을 입은 판사가 직무와 관련된 혐의(뇌물수수)로 긴급 체포되는, 가장 좋지 않은 모습으로 기소될 상황이라 충격”이라며 “비참하다는 얘기 말고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A 판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에서 밀린 뒤에도 계속 법관으로 재직하는 모습에 사욕에는 큰 미련이 없는 분으로 알았다”며 “그런 판사가 사법 신뢰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덧붙였다. 김 부장판사와 과거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B 판사는 “평소 인품이 좋기로 알려진 판사가 이런 일에 휘말린 자체가 놀랍고 충격적이다”라고 털어놨다. 다른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본인이 범죄사실을 얼마나 인정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긴급체포와 영장 청구 사실 자체가 당황스럽고 힘 빠지게 하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뱉었다.
최초 의혹이 제기된 후 김 부장판사의 처신을 문제 삼는 목소리도 나왔다. C 부장판사는 “판사답게 잘못한 부분은 시인하는 대목도 있어야 하는데 의혹을 극구 부인하다가 이리 되니 배신감이 크다”고 털어놨다. 김 부장판사는 4월 25일 공보실을 통해 “정운호를 알지 못한다”고 했으며, 관련 보도가 계속되자 지난 16일 휴직신청서를 내면서도 “금품수수 정황 의혹보도는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었다.
대법원은 부장판사의 성매매에 이어 김 부장판사의 영장 청구까지 악재가 거듭되자 13일 열릴 ‘법원의 날’ 행사를 지난해와 달리 외부 인사 초청 없이 간소하게 개최하기로 정하는 등 자숙 방침을 정했다.
손현성 기자 hshs@hankookilbo.com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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