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이미지의 현대미술 반성
사유와 사색을 전시의 본질로
지역사회와 소통 과정 반영
참여작 25%가 광주를 소재로
도라 가르시아, 녹두서점 재현
‘녹두서점’은 1977년 광주 동구 계림동에 처음 문을 열었다. 1980년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격문과 투사회보 등을 만들어 배포했다. 항쟁의 중심이자 토론의 장이었던 그 녹두서점이 예술로 부활했다. 광주비엔날레 제1전시관 입구에는 2011베니스비엔날레 스페인관 참여작가인 도라 가르시아의 신작 ‘녹두서점-산 자와 죽은 자, 우리 모두를 위한’이 설치됐다. 녹두서점에서 판매되고 읽혔던 주요 서적들을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으로부터 대여해 책장을 빼곡히 채웠다.
아시아 최대 미술축제인 제11회 2016광주비엔날레가 ‘제8기후대: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를 타이틀로 2일 공식 개막한다. 국내외 37개국 101팀(120명)이 참여해 252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예술이 도구로 전락하고 지나치게 상업화된 현실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하는 이번 비엔날레는 예술 그 자체를 무대의 중앙으로 놓고자 한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 66일 동안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비롯한 8곳의 외부 전시장에서 진행된다.
12세기 페르시아 철학자가 ‘상상의 세계’라는 개념으로 사용한 ‘제8기후대’를 전시주제로 택한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미술이 어떻게 미래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예술이 무엇을 하는가’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이번 비엔날레는 예술을 정의하는 데서 나아가 예술이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과 능력을 갖는지에 대한 고민을 담는다.
반드시 실용주의적 접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술이 사회에 어떻게 들어오고 어떤 파장을 일으키는지를 포괄해 다루고자 함이다. 공식 개막을 하루 앞둔 1일 광주비엔날레전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마리아 린드 예술감독은 “현대미술은 정치ㆍ경제 등 사회 모든 영역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미술과 다르다”며 “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매개’로 현대미술을 인식하면서 이번 비엔날레를 감상해달라”고 주문했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전시 자체의 무게는 덜어냈다. 기존 비엔날레가 거대하거나 파격적인 작품으로 구성돼 관람객에게 시각적인 자극을 줬던 것을 생각하면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다소 ‘심심한’ 느낌을 준다. 파티션을 최소화해 작품 사이사이 여백을 뒀고 “스펙터클을 위한 스펙터클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마리아 감독의 의견에 따라 규모가 큰 대형 설치작품도 최소화했다.
올해 광주비엔날레는 과도한 이미지로 뒤덮인 현대미술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대신 사유와 사색을 전시의 본질에 뒀다. 역사성ㆍ현장성ㆍ동시대 현안 등을 어떻게 녹여냈는지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선정했다. 박양우 2016광주비엔날레 대표는 “지나치게 결과물 위주로 돌아가는 수많은 비엔날레에 의문을 제기해왔다”며 “예술ㆍ인간ㆍ사회에 대한 진지한 시선을 지닌 마리아 린드 감독은 (관람객에게)잔잔한 성찰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과정’과 ‘현장’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해부터 작가들이 광주를 방문해 현지 주민들과 지역 밀착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주최측이 전시 준비에 1년 6개월을 소요했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작가들은 지역 사회와의 소통 과정을 작품에 반영했다. 참여 작가 중 4분의 1이 광주 현장을 바탕으로 한 신작을 내놨다.
녹두서점을 재현한 도라 가르시아를 비롯, 뉴욕에서 정치와 미학의 접목을 탐구해온 더그 애쉬포드 역시 한국의 민주주의에 주목했다. 지난 5월 광주와 서울을 찾은 작가는 민주주의의 움직임이 있었던 장소들을 일일이 찾아 촬영한 사진 연작을 소개한다. 작업에는 시민들이 직접 참여했다. 광주 출신 박인선 작가의 ‘뿌리’는 광주의 재개발 지역을 작품 소재로 한 회화작품으로 도시의 급속한 변화에 주목한다. 2012카셀도큐멘타 등에 참여한 페르난도 가르시아 도리는 광주 내 생태계의 흐름과 환경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주민참여형 연극 ‘도롱뇽의 비탄’을 선보인다.
올해는 시민사회와의 접점 확대를 위해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이외 8곳의 외부 전시장을 활용해 본전시를 연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의재미술관, 무등현대미술관, 우제길미술관, 5ㆍ18민주화운동기록관, 두암2동 누리봄 커뮤니티센터, 일곡동 한새봉 두레, 서두문화센터 앞 전광판 등이다.
1일 오후 비엔날레 앞 광장에서의 개막식을 시작으로 2016광주비엔날레는 66일 간의 긴 여정을 시작한다. 예술의 역할에 대한 담론 확대를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도 함께 마련됐다. 지난 1월 시범 프로젝트를 거쳐 매달 지역 밀착 프로그램(월례회ㆍ인프라스쿨)을 진행해왔으며 비엔날레가 끝나는 11월까지 이어간다. 또한 100여 개 중소미술그룹으로 ‘비엔날레 펠로우’를 구성하고, 관련 포럼을 연다. 포럼에는 올해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 등 4명이 발제자로 참여한다.
광주=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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