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마음 속으로 인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명을 꿈꿔왔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은 1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경배 과학재단’ 출범식에서 재단을 세우게 된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재단에 3,000억원 규모의 개인 보유 주식을 기부한 그는 “기초과학 발전과 창의적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을 통해 그 소명에 한걸음 더 다가가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 동안 아모레퍼시픽복지재단 등 그룹이 출연한 재단은 있었지만 서 회장이 개인 재산을 내놓고 세우는 재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중화권을 넘어 전 세계를 매료시키고 있는 K-뷰티 열풍과 화장품 한류의 선구자다. 1945년 설립 이후 70여년간 화장품 사업에만 전념해 왔다. 이런 화장품 기업의 총수가 다소 거리가 먼 기초 과학을 지원하게 된 데에는 아버지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의 영향이 컸다. 서 회장은 “아버지는 항상 과학기술 발전 없이는 사회 발전도 없다고 강조하셨다”며 “학생 시절에도 생물시간이 가장 재미있었고 만화 아톰을 볼 때가 제일 즐거웠다”고 밝혔다.
서 회장은 경영 전선에 뛰어든 후에도 과학의 힘을 크게 느꼈다고 설명했다. 그는 “1990년대에는 회사가 정말 어려워 거래처에서 야단맞는 것도 지겨울 정도였다”며 “강한 상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수백 번의 실험을 통해 비타민유도체를 화장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는데 이를 통해 회사가 다시 일어났다”고 소개했다. 97년 아모레퍼시픽의 경영난을 타개한 아이오페 ‘레티놀2500’의 탄생 스토리다.
서 회장은 그러나 이번 재단 설립과 그룹 경제 활동은 별개라고 못박았다. 사회공헌을 재단의 유일한 명목으로 내세웠다. 그는 “이미 우리 회사는 1년 예산의 3% 가까운 돈을 쓰면서 스스로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연구하고 있다”며 “재단은 순수하게 과학 그 자체에 대한 접근이며 아모레퍼시픽의 이해관계와는 완전히 분리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서경배 과학재단은 매년 3~5명의 기초과학 연구자를 공개 모집, 각 과제당 최대 25억원의 연구비를 지원할 예정이다. 대상은 기초과학 연구에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자 하는 창의적이고 열정적인 한국인 연구자들이다. 첫 선정자는 오는 11월 과제 공고를 한 뒤 국내외 전문가들의 심사를 거쳐 내년 6월 최종 발표된다.
그는 젊은 과학자들의 연구 몰입에 필요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 약속도 잊지 않았다. 서 회장은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무궁히 열려 있다는 천외유천(天外有天)이란 말이 있듯, 잠재력을 가진 젊은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사고하고 연구 영역을 무궁무진하게 확장할 수 있도록 꾸준히 지원할 것”이라며 “재단을 1조원 규모까지 키우는 게 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과학을 포기하는 건 미래를 포기하는 것”이라며 “제가 사업을 잘해서 재단을 잘 운영하다 보면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도 여럿 나오지 않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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