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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가을, 기후변화를 질문해야 하는 계절

입력
2016.09.01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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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계속될 것 같던 더위가 하룻밤 비로 물러가고, 푸른 하늘에 높이 뜬 구름과 선선한 바람이 가슴을 탁 틔워주는 가을이 왔다. 이미 올겨울 닥칠 추위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꽤 있지만, 어쨌든 당분간은 마음마저 너그러워지는 날씨가 계속될 것이다. 물론 추석 장을 보면서 이제 한반도에서는 거의 잡히지 않는다는 명태 때문에 기후변화를 생각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이상기온이 닥치기 전에는 언제나 너무 바쁘고 당장 닥친 일에 골몰하는 도시인들의 생활에서 기후변화란 언제나 너무 먼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청량한 바람이 솔솔 부는 계절 가을이야말로 기후변화를 생각하고 질문해야 할 때다. 그 이유는 우선 한 달 넘게 지속되는 열대야가 기후변화를 실감하게 만들 수는 있어도 제대로 생각하는 것은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여름 더위에 지치거나 한파에 얼어붙은 몸과 마음으로는 나를 넘어 사회와 생태를 생각하는 깊은 생각을 하기가 어렵다. 이는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논란이 실제로는 우리 사회가 전기를 생산해서 사용하는 방식에 대한 질문과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쟁점을 담고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기요금 폭탄이 가장 크게 부각되고 누진제 개선 이상으로 논의가 확대되고 있지 않은 데서도 볼 수 있다. 사실 기후변화란 이미 농업이나 어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이 실감하고 있듯이, 여러 사람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잊고 기다린다고 해서 저절로 사라질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복잡한 문제일수록 하루를 지내기 괴롭지 않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좋은 날씨에 씨름해야 하는 것이다.

이왕 기후변화에 대해 작심하고 생각해 보려면 조금 더 글로벌한 차원에서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2015년 12월 파리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무려 198개 국가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힘닿는 대로 노력한다는 합의를 이뤄냈다. 21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폭을 섭씨 2도 아래로 낮춘다는 것이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지적도 있지만, 어쨌든 20여년 만에 그나마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현재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제들이 전세계적으로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 한 예로 유럽 전체를 난민 문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몰아넣고 있는 시리아 내전이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알 고어와 버니 샌더스와 같은 정치인들은 모두 앞다퉈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을 전쟁과 난민 발생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아마도 한국의 많은 시민도 시리아 난민 문제를 역시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징후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의 원인이 정말 기후변화인가를 묻는 것도 필요하다. 기후변화는 물론 삶을 어렵게 만드는 조건이지만, 이러한 문제를 함께 극복할 ‘사회’가 있다면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난민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가뭄의 배경에 있는 잘못된 농업 정책이나, 새로운 시도를 짓밟은 정부의 책임을 빼고 기후변화만을 탓하는 것은 사실 내전에 책임이 있는 시리아 정부 입장을 간과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후변화는 어느 만큼은 적응하고, 또 어느 만큼은 막아 내야 할 복합적인 문제이며, 결국은 오랫동안 풀어가야 할 숙제이지 한 방에 해결하거나 과학자들에게 맡겨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또한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를 누구나가 공평하게 감당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빈곤이나 정의, 계급과 노동 같은 사회 담론의 오래된 주제들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

결국 기후변화는 그 자체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인간의 과거 행적과 현재의 삶,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획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질문인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하기에 무더위를 이겨내고 가뿐한 마음으로 가을을 맞은 지금만 한 때가 또 있겠는가.

백영경 한국방송통신대 교수ㆍ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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