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만큼 accent에 민감하고 예민한 사회도 없다. 억양에 따라 계층과 배경을 판단하는 것은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흔히 영국 영어의 표준은 RP(Received Pronunciation·표준발음), BBC English, Queen’s English, Oxford English 등으로 알려져 왔다. 영어 종주국에서 표준이나 정통 얘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역설적으로 영국 내의 사투리가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standard(표준)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General American English(보편적인 미국 영어)라고 부르는 것과 대비된다.
그런데 1990년대 들어서면서 영국의 RP 억양을 누르고 젊은 층, 지식층에서 인기를 더해 가는 억양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Estuary English다. 좌우로 뻗은 Thames River를 낀 여러 지역인 Oxford, Reading, Slough, Southend 등의 억양이라고 해서 강어귀라는 뜻의 estuary를 붙여 ‘Estuary English’라고 부르게 됐다. Estuary English는 영국의 남동지역과 수도 London에서 쓰이는 발음으로 RP영어와 London accent의 중간 억양이다. 넓은 의미에서 London 억양에는 서민층과 노동자 계층의 발음 Cockney도 포함되는데, 표준을 지키면서 도시 시민의 다양한 계층을 흡수한 발음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Estuary Accent가 영국의 House of Commons(하원)와 the Lords(상원)의 토론장에서 들을 수 있는 억양이며, 기업은 물론 관청이나 지방 정부, 언론, 의학, 교육 분야에서 널리 쓰이는 억양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며 향후에는 영국 표준 RP를 대신할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중세기말에 수도의 억양이 법정에 영향을 끼치고 결국 RP를 형성한 것을 감안하면 Estuary English는 가장 유력한 영국 억양으로 정착 중이고, 일부에서는 벌써 ‘standard British accent’라고 부른다.
Estuary Accent의 특징을 보면 이렇다. 우선 t음이 받침으로 들어갈 때 이를 삼키듯 발음하는 경향(glottal stop)이 있는데, ‘ScoTland’, ‘neTwork’ 등에서 대문자로 표기한 t음을 발성하지 않고 ‘스코ㅌ랜드’, ‘넽웤’처럼 발성한다. 또박또박 발음하는 BBC나 RP억양과는 다르고 굳이 비교하자면 미국식 발성과 흡사해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Bentley의 발음은 ‘벤틀리’가 아니라 t음은 생각만 하고 실제는 ‘벤리’처럼 소리 난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영국의 기존 발음에서 ‘Get up’은 ‘게텁’대신 ‘개럽’으로 바뀔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층의 억양이라는 Estuary English는 딱딱한 RP보다 더 친근감 있게 대중성과 공신력을 함께 확보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영어연구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