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브리핑 후 질문은 손에 꼽을 정도
하나은행은 ‘조건부 지원’ 잠정 입장 들고 왔다가 철회
“구조조정 원칙론 아니었어도 자금 지원 어려웠을 것”
30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한진해운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을 비롯해 KEB하나은행, NH농협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등 채권단 구조조정 담당 임직원들이 모였다. 당초 산은은 각 채권은행으로부터 신규 자금지원 동의 여부를 서면으로 취합할 예정이었지만, 한진그룹이 대한항공의 2,000억원 증자 시기를 앞당기는 등의 수정 자구안을 제출하자 긴급회의를 소집한 것이다. 시장에서는 채권단이 결국 ‘대마불사론’에 밀려 한진해운을 막판 회생시키는 결정을 내놓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상당했다. 채권단 회의가 끝나기 직전인 오전 11시30분께 한진해운 주가는 전날보다 18% 이상 급등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본 결과, 이날 회의는 “한 푼도 더 빌려 주기 어렵다”는 채권은행들의 강경한 분위기 속에서 30분 만에 결론이 났다. 회의는 ▦한진해운의 추정 재무제표(2018년까지 적자 예상) ▦상거래 채권 연체 규모(6,500억원) ▦해운업황 전망 ▦용선료 인하 협상 ▦선주협회 주장 등을 설명하는 산은의 브리핑으로 시작됐다. 20여분에 걸친 브리핑 이후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지만 나온 질문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 회의 참석자는 “자금 지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면 질문이 많이 나왔겠지만, 모든 은행들이 자금지원이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어서 굳이 질문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전했다.
대우조선해양에 혈세를 퍼붓는다는 비판의 중심에 있는 산은은 물론, 3,290억원의 대규모 적자(당기순손실)를 낸 농협은행이나 민영화를 앞두고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는 우리은행 등 나머지 은행들도 전부 추가 자금 지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산은에 이은 2위 채권자인 하나은행은 당초 ‘다른 은행이 자금지원에 동의하면 우리도 동의하겠다‘는 형태의 ‘조건부 동의’를 잠정 입장으로 정하고 회의에 참석했지만 다른 은행들의 강경한 분위기에 조건부 카드를 접은 것으로 전해진다.
은행들은 이날 회의에서 ‘돈을 빌려주면 떼이지 않고 제 때 돌려 받을 수 있느냐’는 금융 논리를 무엇보다 우선시 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시 산업에 미치는 영향 등이 짧게 언급되기는 했지만 업계의 ‘연간 17조원 피해‘ 논리는 검증하기 어려운 일방 주장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한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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