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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다고? 수상하다고!

입력
2016.09.0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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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설리의 SNS를 통해 공개돼 논란에 휩싸인 사진작가 로타의 사진. 사진 속에서 한 장의 티셔츠를 함께 뒤집어 쓴 설리와 구하라는 수동적인 태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설리 인스타그램
지난 20일 설리의 SNS를 통해 공개돼 논란에 휩싸인 사진작가 로타의 사진. 사진 속에서 한 장의 티셔츠를 함께 뒤집어 쓴 설리와 구하라는 수동적인 태도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설리 인스타그램

로타라는 사진가는 소녀를 주제로 사진을 찍는다. 찍는 사진마다 이슈가 되며 SNS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한 인기를 발판으로 최근에는 여자 아이돌을 모델로 왕성하게 상업 사진 활동을 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사진을 살펴보면 영 어색하다. 일상적인 실내 공간으로 연출된 사진의 배경에 맞춰 모델은 티셔츠나 짧은 운동복 등의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옷을 입고 있다. 그런데 모두 엉덩이를 살짝 들고 엎드려 있다거나 배를 들추고 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양 볼에는 어색하리만치 진한 분홍색 화장을 했고, 빤히 쳐다보는 눈과 눈썹은 살짝 팔자를 그리고 있어서 뭔가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끄럽다면 시선을 피하거나 셔츠를 내려 배꼽을 감추거나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앉아있으면 될 일인데, 아무리 봐도 뭔가 좀 어색하다.

그런데 털끝 하나 노출이 없는 이 사진들에 꽤 의미심장한 논쟁이 이어졌다. 우선은 여체를 대상화한다는 것에 대해 페미니즘 진영을 중심으로 비판이 쏟아졌다. “‘로타’라는 이름이 ‘로리타 오타쿠(어린 여자와의 성적인 접촉이나 그 접촉을 다룬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라는 뜻이라더니, 네 딸이라면 그렇게 묘사할 수 있겠느냐” 등의 비판에 대해 로타는 단지 소녀의 순수를 그리고 싶었다고 항변해왔다. 그리고 그 항변과 더불어 “작가의 생각을 존중해야 하지 않느냐”는 팬들의 지원 사격이 이어졌다.

물론 여체를 대상화해서 소비하는 풍토가 하루 이틀의 것도 아니고, 그보다 더 수위가 높고 저열한 성인 콘텐츠가 많은 상황에서 유독 로타의 사진만을 비난하는 것은 당사자로서 조금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아이돌 걸그룹이 테니스 스커트를 입은 채로 뒷짐지고 생머리를 휘날리며 수동적 소녀를 연기하는 상황인데, 왜 굳이 로타의 사진을 걸고 넘어지냐는 것이다.

‘일본으로 불현듯 떠난 여행’을 주제로 방송인 윤태진과 로타가 함께 작업한 사진. 사진집 발간을 앞두고 사인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돌연 취소됐다. 로타 인스타그램
‘일본으로 불현듯 떠난 여행’을 주제로 방송인 윤태진과 로타가 함께 작업한 사진. 사진집 발간을 앞두고 사인회를 열 예정이었으나 돌연 취소됐다. 로타 인스타그램

이 사진을 설명하며 일본 문화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해서 섹시함을 강조하는 방법이야 전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 로타의 방법은 일본 그라비아 화보 속 모델의 표정이나 포즈는 물론,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여체를 다루는 법을 본보기 삼아 나름의 해석으로 발전시킨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사진 속 소녀에게는 국적도, 나이도, ‘그런’ 포즈를 취하고 있어야 할 설명도 없다. 다만 (남자가 어떻게 해보기 쉬울 정도로)어려 보이는 소녀가 (적극적으로 성적 요구를 전달하지 않았는데도)알아서 살며시 (어딘가를)보여주려고 한다는 게 전부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수동적이면서 순수하게 보이는 소녀에 대한 성적인 판타지를 품고 있는 문화라고 전제해보면, 로타의 사진은 일본 그라비아 화보의 2016년 한국식 버전이다.

지난해 출간한 사진집 ‘걸스(Girls)’. 쎄프로젝트 제공
지난해 출간한 사진집 ‘걸스(Girls)’. 쎄프로젝트 제공

물론, 로타의 사진을 놓고 외설이라고 규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해묵은 논쟁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러나 단순히 일본 그라비아 화보를 2016년의 한국에 맞춰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라면, 왜 그러한 취향이 재생산되고 있는지 파악해봐야 한다. 즉, 적나라한 노출 없이 그저 수줍어하는 순수한 소녀를 담았을 뿐인 로타의 사진이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어떠한 여성상에 제 성욕을 투영하는지 살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 사진이 담는 소녀의 모습이 심의 등급의 선을 넘지 않은 아름다운 소녀일지언정, 그 모습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소녀에게 바라는 모습, 그러니까 순수하되 다소 섹시하게, 아직 첫경험도 치르지 않았을 것 같지만 왠지 자신에게는 은밀하게 팬티를 보여줄 것만 같은 소녀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타의 사진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동성애라기보다는 뭇 남성들의 순수한 소녀에 대한 관음증적 집착, 즉 순결 이데올로기에 가깝다.

물론 아무리 그 취향이 시시해 보여도 그런 소녀를 좋아하는 것을 무작정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에서 일어난다. 실제로 대부분의 남성들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에게 ‘기가 세다’는 식의 단서를 달아 불편해하면서,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은 만만한 대상’을 원한다. 그리고 이는 근래에 이슈가 되기 시작한 몇 가지 성범죄와 묘하게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내 시선의 대상으로 거기에 있기만 해라. 나는 네 의도와 무관하게 훔쳐볼 것이다’라는 식의 몰래 카메라나, 하룻밤 섹스를 위해 상대에게 술이나 약을 먹여 항거 불능의 상태로 만드는 일 모두 사실은 여성을 강제로 수동의 영역에 가둬놓기 위해 벌이는 범죄다. 이들에게 여성은 고작해야 나의 성욕을 풀기 위한 ‘섹스돌’에 불과할 뿐 능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아닌 것이다.

게다가 여성을 수동의 영역에 몰아넣으려는 시도는 굳이 범죄를 떠올리지 않아도 한국 사회 곳곳에 팽배하다. 학생을 범하는 선생이 등장하는 일본 포르노의 대사를 농담의 소재로 쓰면서 만만한 여직원들을 놀리거나, 티셔츠 하나 입었다고 찍어 눌러서 일을 그만두게 하거나, 고작해야 스타벅스 정도를 들락거릴 수 있는 경제력을 두고 사치스러운 된장녀로 낙인 찍는 현실은 모두 주체적 여성상이 남성들에게는 왠지 불편한 존재, 성욕을 포함한 자신의 욕구를 자유롭게 펼쳐놓는 데 방해가 되는 존재라는 인식을 배경에 두고 있다.

아직도 한 켠에서는 로타가 찍은 ‘순수한 소녀’의 모습에 열광하는 수많은 ‘아재’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페미니즘이 고개를 들 때마다 ‘진짜 페미니즘’이 아니라는 식으로 물을 흐리는 대표적인 사람들이기도 하다. 한 켠에서는 능동적인 여성을 찍어 누르는데 급급하다가, 다른 쪽으로는 연출된 순수함에 환호하며 바지춤에 손을 넣는 그들은 과연 여성 혐오자일까? 아니면 단지 순수함을 좋아하는 아저씨들일뿐일까?

함영준 일민미술관 책임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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