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7년 일본 자동차 업체 도요타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차를 선보였다. 친환경성과 고연비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엔진에 배터리로 가동하는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차다. 휴대폰 업계 혁신의 아이콘이 애플의 ‘아이폰’이라면 프리우스는 이전 100년간 자동차 산업을 주도한 내연기관 시대에 일대 변화를 일으킨 혁신의 상징인 셈이다.
한때 독일산 디젤차의 거센 질주에 주춤하기도 했지만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이 드러나며 프리우스로부터 시작된 하이브리드차가 다시 주목 받고 있다.
무려 20여 년 전 도요타는 어떻게 프리우스를 만들었을까. 당시는 모든 업체가 엔진 기술 열중했던 시대였는데 말이다. 사실 처음부터 하이브리드차를 목표로 잡았던 것은 아니다. 세상을 놀라게 한 많은 혁신적인 상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요타자동차에 따르면 프리우스는 1993년 9월 “머지않아 21세기가 되니 중장기적으로 자동차 본연의 모습을 고민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당시 도요다 에이지 명예회장의 한 마디에서 출발했다.
곧 사내에 프로젝트팀이 결성됐다. 목표는 밑도 끝도 없이 ‘21세기가 원하는 자동차’였다. 1세대부터 4세대까지 모든 프리우스 개발에 참여해 ‘프리우스의 산파(産婆)’로 불리는 오기소 사토시 전 상무를 주축으로 10여 명의 엔지니어는 덩치가 아담하되 실내가 넉넉하고, 20㎞/ℓ의 연비가 가능한 차를 제안했다. 한데 회사에서는 그 이상을 원했다.
이후 프로젝트팀에 합류해 개발을 총괄한 ‘프리우스의 아버지’ 우치야마다 다케시 도요타 회장은 “코롤라보다 연비가 두 배 좋고 배출가스도 줄이지 못하면 면직시키겠다”는 으름장까지 들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내놓은 해법이 하이브리드차였다.
19세기 말 포르쉐 창업자인 페르디난트 포르쉐가 ‘로너 포르쉐’를 통해 선보였고, 1993년 메르세데스-벤츠가 ‘비전 A 93’이란 콘셉트카로 화제를 모으는 등 하이브리드차의 개념 자체는 이미 널리 알려졌지만 경제적으로 구현하는 게 문제였다. 누구도 양산에는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통 신차 개발에는 기존 차가 밑바탕이 되는데, 프리우스에는 이런 게 존재할 리 없어 프로젝트팀은 처음부터 모든 걸 새로 해야 했다. 엔진을 전부 알루미늄으로 만들고, 지붕을 받치는 필러 철판은 고주파 열처리로 강도를 높이면서 두께를 줄였다. 무게 최소화를 위해 뒷유리도 최대한 얇게 제작했는데, 모든 노력의 궁극적인 목적은 연비 향상이었다.
’도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THS)’의 개념도 이때 정립됐다. 모터는 열 발생이 적고 전력을 동력으로 바꾸는 효율이 높지만 무거운 게 단점이다. 배터리 역시 무겁다.
기술진이 6개월 간 80개의 하이브리드 설계안을 검토한 끝에 찾아낸 최고의 조합은 모터를 2개 사용하는 일명 ‘직병렬 하이브리드’였다. 이 방식은 모터 한 개가 엔진에 힘을 보태고 감속 시에는 발전기처럼 배터리를 충전한다. 다른 모터는 엔진의 힘을 이용해 계속 배터리를 충전한다. 기존 자동차의 필수품인 변속기는 더 이상 필요가 없었다. (이후 다른 업체들은 도요타 특허를 피하기 위해 한 개의 모터에 변속기를 조합한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프로젝트팀은 이렇게 개발을 마치고도 처음에는 한정생산 정도를 예상했다. 21세기 초까지는 탈 만한 하이브리드차를 만들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회사의 판단은 달랐다. 시판할 차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결정됐다. 준비는 돼 있었지만 상당히 갑자기 라틴어로 ‘앞서 가는’이란 의미의 프리우스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세계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차란 타이틀을 획득한 프리우스는 세계 자동차 업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혼다를 비롯해 다른 업체들도 잇따라 하이브리드차 생산에 뛰어들었고, 차량용 배터리 기술 발전을 이끌어 전기차 시대를 앞당겼다. 혼혈이나 잡종을 뜻하는 ‘하이브리드’란 용어가 생물학 전공서적에서 튀어 나와 두 가지 동력원을 쓰는 자동차를 의미하는 대명사같이 쓰일 정도로 소비자의 뇌리에 각인됐다.
근 20년 간 프리우스는 하이브리드 차의 지존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판매량은 1997년 일본 내 323대에서, 지난해 글로벌 시장 20만3,000여대로 증가했다. 누적 판매량은 384만여 대다. 400만대 돌파가 임박했다.
프리우스에 대한 도요타의 자부심은 남다르다. 한국토요타 관계자는 “우리 전통 중 ‘기간 기술은 손바닥화 한다’는 게 있는데, 중요한 기술이나 부품 개발을 외주 업체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한다는 뜻”이라며 “프리우스가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차”라고 강조했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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