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가보리라 벼르던 섬이다. 멀어 더욱 아련한 섬. 제주까지 가서 다시 배를 타고 1시간 이상을 내달려야 닿는, 뭍과 제주의 딱 중간에 떠있는 추자도 이야기다.
추자도는 제주에 속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추포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로 이뤄진 군도다. 각각의 섬들은 크지 않지만 섬들을 두른 추자도의 바다는 넓고 풍요롭다.
섬의 생김새는 제주의 화산섬과 완전 다르다. 또 다도해ㆍ한려수도 국립공원 섬무리들과도 같지 않았다. 큰 바다와 맞선 섬들은 파도와 바람에 더 많이 깎여, 수직의 거대한 해벽을 두르고 있고 원뿔, 사자 등 기묘한 형상을 품은 갯바위들도 여럿이다.
추자도 풍경의 하이라이트 나바론 하늘길
제주의 대표 브랜드인 올레길은 추자도에도 놓여있다. 상추자도 하추자도를 도는 17.7㎞길이의 18-1코스다. 추자도의 대표적인 풍광을 잇고 있는 길이라 이 길만 걸어도 충분히 추자도를 느낄 수 있다.
이 올레길에 더해 올해 새로 닦인 길이 있다. 추자면에서 직접 놓은 특이한 이름의 ‘나바론 하늘길’이다. 상추자도의 남서편 해안은 거대한 해벽이다. 섬을 찾은 낚시꾼들이 오래 전 영화 ‘나바론의 요새’에서 따와 ‘나바론 절벽’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그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깎아지른 절벽 위를 걷는 2.1㎞의 길이다. ‘아재’ 취향의 생뚱맞은 이름이지만 그 풍경이 빼어나 지금은 올레길보다 더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나바론 절벽의 위용을 한 눈에 감상하는 전망대가 용둠범. 이곳에서 바라보면 왜 낚시꾼들에게 나바론 요새가 떠올랐을지 이해가 간다. 용둠벙 입구에서 나바론 하늘길이 시작된다. 초반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길이 버겁다. 절벽의 꼭대기로 바로 치닫는 길이기 때문. 하지만 계단의 정점에 서면 허벅지를 다독거리며 오른 보람이 있다. 딛고 선 상추자도는 물론 추자군도의 아름다운 바다 풍경이 한가득이다.
이제부턴 벼랑을 타는 길. 날카로운 추자의 벼랑 그 황홀한 풍광 한복판을 아슬아슬하게 지난다. 바로 아래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굽어보면 현기증이 인다. 높이 때문만이 아니다. 빨간 지붕이 어깨를 잇는 항구의 고즈넉한 풍경과 저 멀리 펼쳐진 겹겹의 섬들, 또 고개를 돌리면 광활한 바다와 깎아지른 우람한 절벽이다. 360도 꽉 둘러싼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절벽을 따라 길은 계속 이어진다. 오르락 내리락 능선을 따른다. 해군기지를 지나고 잠시나마 푸른 숲터널도 통과한다. 길은 추자도의 최고 높은 봉우리인 등대전망대에 닿는다. 여기서 바로 마을로 내려가거나 능선을 타고 추자교까지 걸음을 옮길 수 있다.
올레길 따라 상ㆍ하추자도 한바퀴
나바론 하늘길이 강렬한 추억을 새겨주는 곳이라면 추자도 올레길은 조곤조곤 섬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길이다. 코스는 추자항의 등대산공원에서 시작한다. 작은 언덕을 올라가면 팔각정이 있는데 이곳에서 염섬 예도 검등여 추포도 횡간도를 비롯 추자군도의 섬들을 감상할 수 있다.
바닷가 능선을 따라 오르면 최영 장군 사당에 닿는다. 제주에서 일어난 난을 진압하러 가던 최영 장군이 풍랑을 만나 이 섬에 들렀다가 주민들에게 그물을 펴서 고기를 낚는 기술을 가르쳐줬다고 한다. 추자도 주민들은 이를 기려 해마다 제를 올린다.
상추자도 북쪽 끝엔 다무래미섬이 붙어있다. 썰물 때는 바닷길을 통해 걸어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섬이다. 섬의 뒤편은 돔낚시 포인트로 이름난 곳. 길을 안내한 주민 김준헌(57)씨는 “이곳을 찾는 낚시꾼들의 구조요청이 많다”고 했다. 썰물 때 걸어 들어갔다가 나올 때 밀물을 만나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 그렇다.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잇는 추자교 또한 이야기 거리다. 섬과 섬을 잇는 다리로는 국내서 처음 놓여진 다리다. 1972년 완공된 다리는 이후 사고로 무너졌고 지금의 다리는 95년 새로 조성됐다.
하추자도의 묵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에선 오래도록 머물게 된다. 묵리는 산자락에 둘러싸여 해도 늦게 뜬다는 고요한 마을. 고갯길 전망대에 서면 저 멀리 사자 모양을 한 수덕도 등 제각각 모양과 크기의 섬들이 바다를 아늑히 감싸고 있다.
섬의 동쪽 끝엔 천주교 성지 중 하나인 황경한 묘가 있다. 다산 정약용의 질녀인 정난주의 아들이다. 천주교 박해 때 제주로 유배를 떠난 정난주는 이 섬에 들렀을 때 두 살 된 아들을 예초리 해변의 바위에 놓고 떠났다. 유배지에서 키우는 것보단 낫겠다 싶어 아이의 이름과 연유를 쓴 편지와 함께 아이를 내려놓은 것. 섬의 오씨 성을 가진 이가 이 아이를 거둬 제 자식 이상 잘 키웠다고 한다. 한때 추자도에선 황씨와 오씨는 한 집안이라 여겨 결혼을 안 시켰다고 한다. 황경한 묘 건너편 물생이 끝 갯바위에 눈물 형상의 십자가가 설치돼 있다.
추자도=이성원기자 sungw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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