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뒤에도 미혼 행세 사기
의사라는 사실 믿게 하려고
아내ㆍ딸에 불법의료 행위도
임상병리사 윤모(36ㆍ여)씨는 2011년 6월 지인 소개로 이모(41)씨를 만났다. 윤씨는 서울대병원 소아과 의사라고 밝힌 이씨에게 첫눈에 반했다. 유창한 말솜씨와 박식함이 윤씨 마음을 사로잡았다. 두 사람은 곧 결혼을 전제로 동거에 들어가 교제 5개월 만에 예식을 올렸다. 2년 뒤 딸까지 얻었고 혼인신고를 통해 법적 부부도 됐다.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었다.
하지만 윤씨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이 혼인빙자 사기 혐의로 올해 5월 구치소에 수감되면서다. 이씨는 면회를 온 윤씨에게 “의료사고로 구속됐다”며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때마침 구치소를 찾은 이씨 누나가 “동생은 의사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5년 결혼생활은 전부 거짓으로 밝혀졌다. 사실 이씨는 의약품 납품업체 영업사원이었지만 결혼 뒤에도 미혼 의사 행세를 하며 다른 여성들에게서 돈을 뜯어낸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의 사기극은 치밀했다. 개인병원을 개업한다고 속여 윤씨한테서 3억6,000만원을 받아 챙겼다. 상견례 자리에서 만난 이씨 부모와 결혼식 하객들도 모두 대행 아르바이트로 고용된 가짜였다. 이씨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의사로 믿게 하기 위해 아내와 딸 등에게 판촉용 영양제와 폐렴구균 백신을 주사하는 등 22차례에 걸쳐 불법 의료행위를 하기도 했다.
이씨는 남성들에게도 접근해 자신이 유명 로펌인 김앤장의 인수합병(M&A) 전문 변호사라고 속여 투자금을 뜯어냈다. 각종 사기로 2011년 4월부터 올해 5월까지 그가 챙긴 돈은 11억원에 달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이씨를 사기와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입건했다고 31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가로챈 돈 대부분을 주식 투자나 유흥비로 탕진했다”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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