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뤄진 대만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정부가 취임 3개월을 맞아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유명한 프로그래머이자 핵티비스트(해커 사회운동가)인 오드리 탕(대만이름 탕펑ㆍ唐鳳ㆍ35)을 내각인 행정원(行政院)의 정무위원에 임명한 것. 기존 정부 부처의 장관은 아니지만 특정 영역의 업무 추진 필요성이 있을 때나 정부 부처 간 통합과 협조를 맡기는 장관급 직책이다. 한국으로 치면 ‘장관급 국무위원’이라고 하면 될까. 행정원은 이번에 오드리 탕을 임명하기 위해 ‘디지털 총괄 정무위원’이란 새로운 직책을 만들었다.
임명 소식이 발표되자 대만 사회에선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10월 1일 정식 취임할 탕 신임 정무위원은 역대 각료 중 최연소이며 유일한 중학교 중퇴 학력일 뿐 아니라 트랜스젠더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임명된 정부인사다.
오드리 탕 “정책 홍보자가 아니라 소통의 통로가 되겠다”
오드리 탕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입각 소식을 밝히면서 “디지털 기술과 시스템으로 정부를 도와 문제를 해결하고,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는 디지털 과학기술을 통해 시민과 정부를 연결하며, 시민 공동체 내의 소통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내 자리는 어느 특정 집단만 대표하거나 정부를 위해 정책홍보를 하는 게 아니라, ‘통로’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힘을 더 잘 결합시키는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린췐(林全) 대만 행정원장(국무총리)은 25일 “탕 신임 위원의 역할은 기존 정무위원과는 좀 다르다”면서 “각 부처에 대외적으로 정책 소통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민간이) 정부의 정보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산업혁신을 꾀하겠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국민들과의 대화나 소통뿐 아니라 정보공개와 정보기술을 통해 산업구조 개혁을 하겠다는 취지로, 박근혜 대통령의 ‘창조경제’와도 유사한 정책 목표로 보인다.
애초 린췐 원장은 오드리 탕에게 정보기술(IT)과 인터넷 영역에서 좋은 인재를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오드리 탕을 추천했고, 결국 오드리 탕이 이를 수락해 입각하기로 결심했다는 것.
현 민진당 차이잉원 정부는 애초 젊은 세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선거에 이기고 출범했다. 취임 후 국민당 시절 일방적으로 강행 추진했던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편집강령 수정안을 철폐하고 국민당이 부당하게 축재한 재산(당산) 몰수에 나서면서 긍정적 평가도 나왔지만, 새 내각 인사에 대해서는 비판이 쏟아졌다. 내각 평균 연령이 62세이고 37명 중 여성은 단 네 명밖에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탕 위원의 임명으로 내각에 대한 청년 세대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조금 개선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8세 때부터 프로그래밍에 관심
탕 위원의 부모들은 모두 신문기자 출신이다. IQ 180인 오드리 탕은 8살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가졌다고 알려졌다. 같은 나이의 애들보다 조숙하고 능력도 너무나 빨리 발전해 오히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탕 위원의 부모와 신문사에서 5년 간 같이 일했던 지인은 “어렸을 때부터 오드리 탕은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많이 나서 반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고 당시 체제로서는 이런 천재를 용납할 수 없어서 어머니도 독학(獨學)교육을 많이 연구하고 혼자 공부하겠다는 아들을 지지했다”고 필자에게 전했다.
결국 오드리 탕은 14살 때 중학교를 떠나 독학을 선택한다. 중학교를 졸업하지 못해 고등학교와 대학교에도 입학하지 못했지만 90년대 중반부터 계속 컴퓨터 영역을 독학해 온 오드리 탕은 겨우 16세에 스타트업을 설립했고 perl 등 세계적으로 사용되는 오픈소스 프로그래밍 언어 발전에 큰 기여를 해 IT산업에서 주목 받는 천재로 떠올랐다. 그 후 오드리 탕은 국내외 여러 대형 IT회사의 고문으로 활동해 왔고 미국 애플사의 컨설턴트로도 일했다.
단순히 산업적인 영역에만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의 가장 큰 관심사 중 하나는 정부에 대한 정보를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열린 정부’(open government)다. 대만에서는 장기간 정부의 정보 투명성이 높지 않았다. 정부의 정보를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들면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고 집행하는지 시민들이 제대로 감독하기 어렵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오드리 탕과 일부 대만 IT분야 활동가들은 디지털 기술로 법률, 예산, 경제지표, 정책보고서, 청문회 영상과 대담기록, 공무원의 해외순방 내용, 국회의원 질의내용 등 각종 자료를 정리해 시각화하고 인터넷에서 공개해 왔다. 이들이 만든 열린정부 웹사이트(g0v.tw)을 통해 시민들은 직접 각종 정보자료를 열람할 수 있게 됐다. 투명하고 보기 쉽게 정리된 자료를 통해 시민들이 정책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근거가 형성됐고, 대만에서 민주주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 정보 공개에 대한 ‘핵티비스트’로서의 오드리 탕의 소신은 다음 영상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오드리 탕은 2005년 트랜스젠더 수술을 받았다. 부모님들은 아들이 딸이 되겠다는 선택을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응원했다. 당시 오드리 탕의 어머니는 “그가 즐겁다면 내가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고 아버지도 “(성전환 후) 더 행복해지면 우리는 모두 지지한다” 고 말했다고 한다. 오드리 탕 자신도 “과거, 지금 그리고 미래에 여러분이 나에게 여성적 칭호로 불러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오드리 탕의 입각 소식에 대해 대만 국민들이 다수 긍정적으로 보고 기대도 적지 않다. 기존 성별에 대한 편견보다 사람의 능력을 더 중시했다는 점에서 대만 정부가 한 걸음 나갔다는 평가, 앞으로 대만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좀더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인터넷을 통해 국민과 언론에 답변
‘공개’와 ‘투명성’은 지금까지 오드리 탕이 제일 중시한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입각 선언을 한 뒤에도 지금까지 인터넷 대화서비스 와이즈라이크(https://wiselike.com/audrey-tang)를 통해 공개적으로 시민과 언론의 질문에 하나하나 답변하고 있다.
미래 대만의 디지털 산업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정부와 민간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는 한국일보의 질문에 오드리 탕은 “민간 디지털산업 사업자가 추진해야 할 구체적인 목표는 직접 세워야 할 일이고, 정부의 역할은 사회 내 각종 네트워크(일반시민, 정치권, 운동권 등)가 상호 정보 교류를 정기적이고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대만과 한국 모두 인터넷이 매우 발달했지만 아직도 노년층은 상당수가 컴퓨터를 사용할 줄 모른다. 민주사회에서 각 세대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년층을 디지털 소통체계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는데, 이에 대해 오드리 탕은 “말, 표정, 손짓과 글 등 오프라인 방식으로 먼저 노년세대와 소통하고 협조해보고, 이 과정을 디지털화하여 노년층도 추후 더 적극적으로 이 기록을 검색하여 사용할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파격적인 입각에 대만 여론은 대부분 긍정적이지만 우려도 없지 않다. 애초 자유롭고 개인주의적 성향인 오드리 탕이 거대한 관료체계에서 다른 정부인사나 공무원들과 어떻게 어울릴지, 또 정치차원에서 자신의 이상을 어떻게 실천할지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하지만 오드리 탕 본인은 태연하다. 그는 자신이 신봉하는 가치가 “보수적인 무정부주의”라고 했다. ‘무정부주의’에 대해 그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서로 돕고 자치하고 반독재적으로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든다”는 위키백과의 설명을 인용하며 “정부인사가 내 구상을 채용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한 더 좋은 대책을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양첸하오(楊虔豪) 프리랜서 기자
※편집자주: 본 기사는 대만 정부가 35세 저명한 프로그래머에게 장관급 직을 임명한 파격적인 인사를 한 데 대해 본보가 현지 실정을 가장 잘 아는 한국 주재 대만 프리랜서 기자인 양첸하오 기자에게 취재를 의뢰하여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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