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란 "더 정진하며 치열하게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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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 "더 정진하며 치열하게 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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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31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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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호란은 휴대폰 통화연결 음악(일명 컬러링)을 쓰지 않는다. 삶을 단순하게 꾸려가는 걸 좋아해서다. 최재명 인턴기자

가수 호란(37ㆍ본명 최수진)은 지난 3월 계모의 학대로 숨진 신원영군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충격을 받았다. 앞서 네 살 아이가 반찬을 남겼다는 이유로 김치를 억지로 먹이고 뺨을 때려 경악을 금치 못한 인천 연수구 송도의 한 어린이집 사건 등 올 초 잇따라 아동 학대 범죄가 벌어진 일들이 한 동안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 서울 강남구 강남구청 인근 카페에서 만난 호란은 “솔로 앨범에 싣기 위해 받아둔 두 곡이 있었는데, 아동 학대 보도를 접하고 아이들이 받은 상처에 관한 노랫말을 싣기로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그 노래가 지난 24일 발매된 솔로 앨범 ‘원더랜드’에 실린 ‘마리’와 ‘마리와 나’다. ‘마리’는 상처 받은 아이가 무심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얘기고, ‘마리와 나’는 마음이 아픈 아이에게 전하는 위로의 노래다.

비슷한 화두의 곡을 두 개나 낸 건 그만큼 호란이 아이들의 상처에 관심이 많았다는 얘기다. “넌 너무 별나”란 말을 듣고 자란 유년 시절의 아픔도 떠올랐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그의 관심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아이에게까지 닿았다. 호란은 온라인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청각 과민성 자폐증 체험 게임 영상을 보고 생각을 바꾸는 계기도 맞았다. 영상은 청각 과민성 자폐증 아이의 1인칭 시선으로 여러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가면 비명이 들리고, 아무도 없는 숲에 가면 비명이 잦아드는 과정이 나온다. 호란은 “마음이 아픈 아이들을 보통의 아이들 틈에서 자라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누군가에겐 고통이 된다는 뜻이지 않냐”라며 “마음이 병든 아이의 입장에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는 말을 했다.

‘카트’에 실린 호란… ”나도 선택 기다리는 존재”

호란의 새 앨범에선 ‘자립’에 대한 의지도 엿보인다. 앨범에는 화려한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호란이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카트에 실려 있다. 카트를 나와 홀로 서는 사진들이 차례대로 실렸다. 호란은 롤러스케이트를 의지의 오브제(objetㆍ상징의 물체)로 썼다. 신은 사람의 의지가 있어야 굴러가는 게 롤러스케이트다. 반대로 카트는 구속을 뜻한다.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 같지만, 결국 누군가의 선택에 카트에 실려 끌려 다닐 수 밖에 없다. 대중의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연예인 호란’에 대한 풍자인 셈이다. 호란은 지난해 ‘연예인’이란 곡에서 연예인 생활의 염증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이 곡에서 호란은 ‘언제나 똑같은 미소만 지을게요 상처는 모르는 것처럼 그대가 한번쯤 나를 봐 준다면 됐어요, 그걸로 나는’이라고 노래한다. 호란이 누구 인가. 방송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자신의 소신을 숨김 없이 표출했던 가수가 호란이다. 그는 2008년 낸 에세이 ‘호란의 다카포’에서 젊은 여성들이 읽는 소설을 일컫는 ‘칙릿’(chick-lit)도 “성적 비하의 표현”이라며 날을 세운 바 있다. 그런 호란이 마네킹처럼 웃기만 하는 연예인으로 산 적이 있었을까. 호란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시선의 폭력을 얘기했다.

“전 분명 퍼포먼스를 파는 연예인예요. 그렇다고 해도 ‘네 말투가 마음에 안 들어’라는 식으로 몰아 부치는 건 충격이었죠. 연예인이긴 하지만 저도 직업인으로서 누려야 할 자유가 있는 건데, 누군가가 원하는 틀에 갇혀 살아야 한다는 게 저한텐 낯설었어요. 물론 지금은 그렇게까지 의식하고 있진 않지만, 제가 누군가에게 팔리는 존재이고,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카트가 떠올랐죠.”

호란이 인터뷰 중 건넨 명함에는 ‘지하달’이란 문구가 써 있었다. 창작을 위해 직접 운영하고 있는 회사의 이름이다. 호란은 솔로 활동의 콘셉트는 ‘도발’로 정리해도 될 듯싶다. 호란은 새 앨범 홍보를 위해 참치 캔까지 샀다. 지난달 신곡 ‘참치마요’를 내고 지인들에 직접 참치 캔을 돌렸다. ‘참치마요’는 내게 다가오는 걸 ‘참지 마요’란 뜻인데, 유사 발음을 제목으로 달아 재미를 준 표현이다. “이 이벤트로 참치 캔 제조회사에서 감사 전화”까지 받았단다. ‘호란표 B급 유머’의 승리다. 이바디 등 프로젝트 밴드에서 재즈 기반의 어쿠스틱 음악을 주로 들려준 호란은 새 앨범에서 록 밴드의 경쾌한 음악(‘바이바이 원더랜드’)도 시도했다. 그는 “내가 솔로 앨범을 낸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생각할까 했을 때 다들 어쿠스틱 발라드를 떠올릴 것 같아서 반전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호란은 학창시절 영미권 록 밴드 음악을 즐겨 들었던 ‘록키드’이기도 했다고. 그는 9월 알렉스 등과 함께 클래지콰이로도 활동한다. 클래지콰이의 새 앨범은 9월 20일 나온다. 2004년부터 클래지콰이 멤버로 활동 중인 호란은 “클래지콰이는 내 친정”이라며 “새 앨범엔 초창기 스타일의 경쾌한 전자음악이 실릴 것”이라고 귀띔했다.

호란은 돈 맥클린의 '빈센트'의 노랫말이 유독 요즘 마음에 와 닿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치지(cheesy·가식적인)하게 여겨" 즐겨 듣지 않았는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번 선곡 한 후 절망 속의 위로가 그렇게 따뜻할 수 없었단다. 최재명 인턴기자

“안빈낙도 하자” 부드러워진 호란

음악인 이승열은 호란 하면 ‘안빈낙도’(安貧樂道)가 생각난다고 했다. 궁색하지만 그것에 구속되지 않고 평안하게 즐긴다는 뜻. 호란이 MBC 라디오 ‘뮤직스트리트’(2006)를 진행하며 한 “안빈낙도 합시다”란 말이 푸근하게 들려서라고. 데뷔 초와 달리 호란은 지인들로부터 요즘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호란은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생긴 변화”라고 했다. SBS 라디오 파워FM ‘호란의 파워FM’를 2년째 이끌어 오고 있는 그는 “그 동안 내가 무시하려고 노력했던 얘기들에 귀 기울이게 됐다”고 말했다.

“전 ‘힘내라’는 말을 제일 싫어했어요. 날 책임질 것도 아니고, 무슨 말이 그래라는 식으로 밀쳐 냈거든요. 그런데 라디오 진행을 하면서 청취자들과 ‘괜찮아 질 거예요’란 말을 주고 받으며 그 말의 힘을 알게 됐어요. 솔직히 올 초 제게 힘든 일이 많았는데, 그런 말이 실질적으로 위안을 주는 힘이 있구나란 걸 깨달았죠. 어느 순간엔 차를 타고 가는데 전광판에 ‘다 잘 될 거야’라고 문구를 보고 눈물이 나는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돈 벌려고 쓴 문구에 아무 관심도 주지 않았을 텐데 말이에요. 제겐 큰 변화죠.”

호란은 글 쓰기에 관심이 많다. ‘다카포’를 낸 뒤 자기 반성과 함께 함부로 책을 내면 안 되겠다는 부담이 생겼지만, 단편 소설을 내는 꿈도 꾸고 있다. 사회적인 이슈에도 눈과 귀를 열어두고 있다. 그는 최근 이화여대 사태에 대해서도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평생교육 단과대학 설립을 추진하는 대학교의 방침에 반발해 학교 본관 점거 농성을 벌이던 이화여대생들 진압을 위해 경찰 병력이 투입된 것을 두고 “학교 측에서 경찰을 들인 일이 충격이었다”고 했다. 98학번으로 대학교에서 여러 시위를 지켜 보며 자란 그가 “화염병을 던지며 시위 했던 때에도 보지 못했던 일 같다”고도 말했다.

호란은 또 한 번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그는 지난 달 남편과 합의 이혼했다. 2013년 웨딩마치를 울린 뒤 3년 만의 결별이다.

“서로의 행복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뭘까 오랜 시간 함께 고민한 끝에 내린 결정이었어요. 구체적인 감정을 일일이 다 표현할 순 없고요. 다만 사적인 영역에서의 최수진이 아닌 가수 호란으로서 더 많이 정진하고 더 치열해지고 또 더 넓고 깊게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드리고 싶어요.”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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