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의 사람들이여, 모두들 껴안아라. 온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형제여”
4명의 성악가, 83명의 단원, 93명의 합창단이 일제히 내는 소리를 연주홀이 부드럽게 감쌌다. 유독 잔향이 길어 대규모 오케스트라 연주는 돌림노래가 될 수 있다고 지적 받은 홀은 특유의 따뜻하고 우아한 소리를 뿜어냈다. 당초 프로그램에 없던 모차르트 ‘거룩한 성체’ 합창으로 시작된 공연은 베토벤 교향곡 9번 ‘환희의 송가’로 이어지며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를 이었다.
2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합창단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는 탁월하면서도 예민한 악기가 특출한 주인을 만난 격이었다. 지휘자 정명훈이 “기도 같은, 음악으로 기도하는 곡”이라고 무대에서 소개한 ‘거룩한 성체’는 모차르트가 죽은 1791년 작곡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기린 노래. 24일 발생한 이탈리아 지진 희생자를 추모하는 곡으로 낙점된 이 곡은 무대를 보지 않고서는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연주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로 연주됐다. 잔향과 공간감이 큰 연주홀이라서 가능한 풍경이었다(기존 국내 연주홀들은 잔향과 공간감이 외국 공연장에 비해 작아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시 큰 소리를 내는데 애를 먹는다).
이어진 베토벤 교향곡 9번은 피아노시모(아주 여리게)로 시작했지만, 이 연주 역시 앞의 연주와 비교하면 소리가 그다지 작지 않았다. “지휘자 정명훈이 콘서트홀의 긴 잔향을 잘 잡아낸, 오케스트라 명성에 비하면 무난했던 연주”(음악평론가 황진규)는 성능 좋은 악기(연주홀)를 제대로 쓰려는 듯, 각 파트별 소리 강약을 극대화했다. 현악 파트가 선율 대부분을 끌고 가는 국내 오케스트라 연주와 달리 연주 내내 현악과 관악이 주 선율을 주고받으며 작품을 이끌었다. 타악기를 무대 맨 뒤가 아니라 45도 각도의 오른쪽 뒤에 둔 것은 팀파니의 공명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끌어냈다. 터키풍 행진곡을 도입한 파트 등에서 지휘자가 템포를 바꾸며 흥을 돋운 것은 관객에 따라 호오가 나뉠 듯했다.
4악장 ‘환희의 송가’에서 합창단의 노래는 이 악단의 저력을 확인하기에 충분했지만, 솔리스트 4명의 노래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기량이 빈약했던 데다 빈야드 형인 무대 특징상 측면 객석이 많아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사이에 배치된 솔리스트들의 노래가 종종 오케스트라 연주에 파묻혔다. 2악장 도입 부분에서는 관악 파트가 불안했고, 4악장 클라이맥스에서 합창과 오케스트라 연주가 살짝 어긋난 점도 아쉬웠다.
이날 공연에 이어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합창단은 31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를 콘서트 버전으로 연주한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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