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캣맘에게서 길고양이와 살인진드기에 관한 뉴스를 봤느냐는 다급한 문자가 왔다. 아마도 또 어느 매체에서 길고양이를 팔아 선정적 보도를 했나 보다 생각했다. 드물지 않은 일이니까. 뉴스를 찾아보니 생각했던 대로였다. 한 동안 톡소플라즈마 때문에 고양이 키우면 기형아 낳는다고 사람들을 기만하더니 이번에 새로운 소재가 등장했다.
서울시에 사는 길고양이 126마리의 혈액을 검사했는데 일명 살인진드기로 불리는 ‘중증 열성 혈소판 감소 증후군(SFTS)’ 바이러스 감염율이 17.5%라는 내용이었다. 여기까지는 팩트. 그런데 기자의 결론은 이상하게 흘러간다. 서울시내 길고양이는 20만 마리로, 연구진은 사람 간 바이러스 전파 사례로 볼 때 길고양이와 사람 간 바이러스 전파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SFTS 바이러스의 동물과 사람 사이의 전염 사례는 없다. 사례도 없는데 뭘 우려한다는 것인가?
정유정 작가의 소설 ‘28’에서 비슷한 구절을 본 것 같아서 뒤적였다. 도시 화양에 사람과 개의 눈이 빨갛게 된 후 수일 안에 죽는 일명 빨간눈 괴질이 돌자 뉴스는 보건당국의 발표를 전한다.
“…개와 사람 모두에게 전염되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추정되며 감염된 개 한 마리가 수백 명의 사람을 동시 전염시키는 것이 가능해 보인다고 밝혔습니다…수용 중인 유기견들을 살처분하고…”
뉴스는 ‘사람이 사람에게, 사람이 개에게’라는 부분을 생략한 채 개의 전염성만 부각하고, 추정과 가능성을 확증처럼 전한다. 개의 살처분을 용인 받기 위한 명분 만들기이다. 하지만 괴질이 무섭게 확산되자 곧 국가는 개만이 아니라 화양 전체를 처분하려는 여론을 만들어간다.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않고 대상화했을 때 누구라도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려인이고 길고양이를 돌보는 캣맘인 정유정 작가는 구제역으로 생매장되는 돼지를 보고 이 책을 구상했다고, 만약 소, 돼지가 아니라 반려동물에게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했다고 했다.
실제로 2014년 그런 일이 발생했다. 에볼라 바이러스로 세계가 공포에 떨 때 스페인에서 첫 환자가 발생하자 당국은 가족이 반대하는데도 반려견을 안락사 시킨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인수공통감염병인지, 개가 인간에 의해 에볼라에 감염될 수 있는지 연구 결과도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반려견에게 에볼라 감염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으니 격리 조치가 합당했음에도 그렇게 홀로 남겨져 집을 지키던 반려견 엑스칼리버는 떠났다. 그들에게 개라는 생명의 무게는 얼마일까? 인간과 얼마만큼의 차이가 있을까?
내게 문자를 보낸 캣맘은 안 그래도 돌보는 길고양이가 고등학생이 던진 돌에 맞아서 상심한 상태인데 이런 보도가 나오면 길고양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더 나빠질까 걱정했다. 언론이 도와주지 않아도 한국에서 길고양이는 충분히 힘들게 살고 있다. 평화롭게 골목길을 걷던 임신한 고양이의 배를 냅다 찬 남자의 “길고양이인 줄 알았다”는 해명이 용인되는 사회. 머리가 잘리고 내장이 터져 죽은 길고양이 사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견되는 사회. 잠이 안 오고, 골목이 지저분해도 ‘모든 게 다 길고양이 때문이야’가 먹히는 사회. 언젠가 이웃집 아주머니가 나에게 길고양이 밥을 주지 말라고 했다. 외출을 나가다가 새똥을 맞았는데 그게 다 내가 길고양이한테 밥을 주니 새까지 몰려서 일어난 일이라고.
밥을 챙기는 캣맘들의 연민에 기대어 사회적 안전망 없이 살고 있는 한국의 길고양이. 캣맘들이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려 노력하지만 늘 한계에 부딪치고 ‘캣맘충’이라는 비난은 덤이다. 고양이를 데리고 택시에 탔더니 자기 동네에 도둑고양이가 많다며 어디에 신고해야 잡아가서 죽여주느냐고 물을 정도로 지자체의 길고양이 TNR 사업은 홍보가 안 되어 있는데, 오늘도 수많은 길고양이가 인간과의 공존을 꿈꾸며 수술대 위에 오른다. 배를 가르고, 귀를 자르고, 뭐를 더 내주어야 인간은 길고양이와의 공존을 허락할까.
*TNR: Trap(포획)-Neuter(중성화수술)-Return(방사)해서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하는 사업으로, 표식으로 한쪽 귀의 일부분을 자른다
김보경 책공장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28’, 정유정,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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