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규명하기 위해 29일 열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가 증인ㆍ참고인의 무더기 불출석으로 맥이 빠졌다. 국정조사 특위가 출석을 요구한 증인ㆍ참고인은 28명으로 절반에도 못 미친 13명만 국회에 나왔다. 한 국정조사 특위 위원이 “묻고 싶어도 답할 증인이 모두 빠졌다”고 개탄하듯, 청문회의 질을 따지기도 민망하다. 청문회 방청석의 피해자 가족 보기에도 부끄러울 정도다.
증인의 무더기 불출석 이유는 다양하다. 국회의 권능이 땅에 떨어진 측면도 있겠지만, 국정조사 특위의 준비 부족과 마구잡이 증인 요청 탓도 크다. 이날 출석하지 않은 핵심 증인의 상당수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 당시 옥시 영국 본사측 인사들이다. 우리의 행정 강제력이 미치지 않아 영국 본사의 협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교섭을 통해 핵심 증인만 추려서 청문회장으로 이끌어내야 했다. 특위 위원장이 영국 본사의 비협조만 탓할 일이 아니다.
가습기 살균제의 안전성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가 있는 신현우 전 옥시 대표와 옥시에 유리하도록 연구보고서를 허위 작성한 혐의인 유일재 호서대 교수 역시 재판 참석을 이유로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국정조사 특위가 이들 핵심 증인의 재판 일정을 고려해 청문회 날짜를 조정하든지, 아니면 재판부와 협의해 증인의 청문회 출석을 유도해야 할 일이었다. 내실 있는 청문회를 위한 사전 준비에 소홀했다가, 당일에 “물을 증인이 없다”고 남의 일처럼 한탄하는 것은 진실 규명 의지나 역량 부족을 자인하는 꼴과 다름없다.
물론 이날 심신미약 등 석연찮은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증인도 있다. 법에 따라 엄중한 조치를 취할 일이지만, 그동안 국회 스스로가 권위를 떨어뜨린 측면이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대우조선해양 부실 지원 결정과 관련한 ‘서별관회의 청문회’에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증인 채택을 두고 여당은 막무가내로 방패막이를 자임했다. 청문회의 내실성보다 정치적 힘의 강약을 기준으로 증인을 채택한다는 인상을 심어줬으니 어느 증인이 제대로 청문회에 출석할까 싶다.
증인의 채택ㆍ출석 여부만이 아니라 증인을 죄인 취급하는 ‘버럭 청문회’, 준비 부족을 드러내는 청문위원의 겉도는 질문 등의 행태 또한 청문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부추기고 있다. 증인과 참고인에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 철저한 사전준비 등 의정 선진국의 청문회를 제대로 배워 제도 개선에 나서지 않는 한 국회 청문회의 후진성을 덜 날이 아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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