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키니 금지조치를 무효화한 지난 주말 최고법원 판결에도 프랑스 내 부르키니 논란은 오히려 가열되는 모양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을 비롯한 유력 대권주자와 정치인의 입장표명이 이어지면서 정치권이 대선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일부러 부르키니 논란을 쟁점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콩세이데타)는 26일(현지시간) 인권단체 등이 빌뇌브루베 시의 부르키니 금지조치를 취소해달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부르키니 금지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심각하고 분명한 불법행위”라고 판결했다. 이 날 결정에 따라 빌뇌브루베 시의 금지조치는 즉각 효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동일한 조치를 시행 중인 나머지 30개 도시 가운데 28곳이 불복 의사를 밝힘에 따라 법적 공방은 내년 대선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르키니 금지를 주장하는 측은 프랑스 헌법 1조의 ‘세속주의 조항’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유력 외신 보도에 따르면 차기 대선싸움에서 안보 이슈를 선점하려는 정치적 행동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대권 도전을 선언한 공화당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가장 발빠르게 움직였다. 대통령 재임 중이던 2010년 니캅(niqab) 등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복장의 공공장소 착용 금지 법안을 주도했던 그는 “부르키니 금지조치를 프랑스 전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강경 보수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이어 극우정당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대표도 “여성을 존중하고 프랑스 세속주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부르키니를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와 동시에 FN측은 “사르코지가 유권자를 포섭하기 위해 우리측 아이디어를 가로챘다”며 선수를 빼앗긴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편 집권 사회당과 이민자 출신 정치인은 이슬람 혐오 정서의 확산을 경계했다. 북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인 나자트 발로 벨카셈 교육장관은 “부르키니 자체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특정 의복을 금지하는 조치는 인종주의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도 “이제 모두 평정심을 되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각각 집권 사회당 출신과 중도파 시장이 재임 중인 해안도시 두 곳은 최고행정법원의 판결에 따라 부르키니 금지조치를 철회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아직까지 중립을 지키고 있다.
강유빈 인턴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