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람을 단출하게 만든다. 이 저변엔 '귀찮다'라는 본성이 깔려 있다. 야심 차게 꾸린 짐이 야속해지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닐 터, 여행에 일가견이 있는 5인의 경험담을 모았다. 어떤 건 의외로 쓸모 있었고, 어떤 건 아무짝에도 쓸데없더라.
▦팩 세이프의 배낭 보호망(프로텍터)
팩 세이프 브랜드는 호주 출신 여행가 롭(Rob)과 마그너스(Magnus)가 안전을 위해 만든 야심작이다. 위험하다고 느낄 때마다 케이블로 배낭을 꽁꽁 싼 뒤 철제 기둥이든 나무든 도둑이 훔쳐갈 수 없는(!) 지지대에 묶어 둔다. 호스텔, 버스와 기차, 화물선 등 장소는 제한 없다. 85리터와 55리터 5개를 사서 카메라 전용 배낭과 65리터 배낭에 각각 사용했다. 공항에서 화물칸에 배낭을 실을 때도 요긴하다. 종종 수화물로 부친 배낭 속 술병이 사라지기도 하는데, 이럴 때 걱정 제로다. (포토그래퍼 rve around)
▦멀티탭
호스텔 이용자라면, 한 번쯤 콘센트에서 벌어지는 사투를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휴대전화와 카메라 등 1인당 필요한 콘센트가 보통 3개 정도다. 사람은 많고 콘센트는 부족하니 눈치 보기 싫어하는 나 같은 성격이라면 필수다. (탐험가, '내게 사막은 인생의 지도이다' 저자 남영호)
▦오가닉 마스크
기내 습도는 평균 15% 내외. 콧속이 건조해진다. 면으로 만든 마스크를 착용하면 날숨 시 나오는 습기를 막아준다. 가습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 감기가 들 조짐이 보이거나 여행지에서 급격한 온도 차가 있을 때도 효과적이다. 뮤지션처럼 마스크를 쓰고 숙면할 때도 있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대가 건조해지는 걸 방지하는 거다. (코스모폴리탄 에디터 류진)
▦쌍안경
망원렌즈가 없는 일명 똑딱이 카메라 소유자에게 바친다. 한번 써보면 세상이 내 것 같은 주인의식이 솟구친다. 쌍안경으로 본 풍경은 곧 다큐멘터리다. 특히 새와 동물 관찰이 주 목적인 여행지에선 필수다. 맨눈으로는 점 같던 새가 음식을 꿀꺼덕 목 넘김하는 현상을 지켜볼 때, 온몸이 찌릿찌릿 전율한다. 간혹 공연장에서도 효자 노릇을 한다. S석은 꿈도 못 꿀 형편, 쌍안경이 있다면 배우나 가수의 카리스마 눈빛에 감동이 배가되는 혜택도 있다. (여행 칼럼니스트 강미승)
▦손톱깎이
대부분 간과하지만 꼭 필요한 아이템. 여행 기간이 5일 이상일 때 안 가져가면 불안하다. 여행 날짜가 길어지는 만큼 충분히 더럽고 지저분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게 바로 손톱과 발톱. 보통 남자들이 그 필요성을 절절히 느낀다. 현지에서 막상 사려면 의외로 구하기 어렵다. 동반자가 있는 여행지에서 자주 나만의 비밀병기로 돌려쓰곤 했다. 발톱까지 싹싹 깎을 때의 그 청량감이란!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스카프
여자에게 스카프는 팔색조다.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다. 돗자리, 배낭 커버, 보자기, 비치 타올, 목 보호대 등으로 대단한 활약을 펼친다. 심지어 랩스커트도 되지 않던가. 가볍고 잘 마른다. 체감상 위험하다고 느껴지는 여행지에서 롱 스카프는 카메라나 보조 가방 가리개용으로도 제 몫을 한다. (코스모폴리탄 에디터 류진, 여행 칼럼니스트 강미승)
▦스위스 아미 나이프
여행 목적과 위기 상황에 따라 효자 노릇을 한다. 특히 트레킹 도중 식사할 때 빛을 발한다. 바게트와 함께 치즈, 캔과 햄 종류 등을 챙겨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어 전망과 함께 한 입! 천상의 맛이다. 칼은 물론 포크 역할도 무난하다. 호스텔에서 기능을 잃어버린 낡은 칼을 만났을 때도 요긴하다. 단, 비행기를 탈 때는 반드시 수화물로 처리하라. 까먹으면 눈물을 머금고 공항 검색대에 헌납해야 한다. (포토그래퍼 rve around)
▦안경 끈
강한 자외선을 막아주는 선글라스. 하지만 선글라스를 벗어야 할 상황이 자주 생긴다. 사진을 찍을 때나 나무 그늘 아래, 혹은 건물에 진입할 시. 이때 허둥지둥 안경집을 가방 속에서 꺼내야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안경 끈을 달면 그냥 벗으면 된다. 세상 편하다. (코스모폴리탄 에디터 류진)
▦배낭 커버(비막이)
배낭 커버의 주된 목적은 ‘비 막이’이지만, 중남미를 여행할 때 실제 용도는 ‘때 막이’ 용이다. 중남미에서 주요 이동수단인 버스의 짐칸은 기름때 천국이다. 스페어타이어가 굴러다니고, 때론 배설물을 동반한 동물이 실리기도 한다. 배낭이 뜯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중남미에선 큰 용량의 배낭과 커버를 사는 게 쉽지 않다. 한국에서 미리 챙길 것. (여행 칼럼니스트 강미승)
▦종이테이프
여행 시 뭔가 간단히 붙여야 할 일이 꼭 생긴다. 영수증 등을 스크랩하기에 좋아 휴대한다. 테이프 위에 필기하기도 쉽다. 다른 용도도 있다. 급하게 신발을 신다가 뒤꿈치가 까질 때, 손톱이 깨졌을 때 구급용 밴드로도 좋다. 완벽하진 않아도 응급 처치 정도는 된다. (일러스트레이터 밥장)
▦호루라기
안전 앞엔 장사 없다.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안정을 주는 편. 일명 ‘포터블 보디가드’다. 도둑이나 치한 등의 기습 공격에 호루라기 하나로 주변인을 모두 경찰로 변신시킬 수 있다. 중남미 여행지라면 호신용 외 쓰임새가 제법이다. 달려드는 떠돌이 개 쫓기 용으로, 좁은 도로에서 서로 꼬인 차량을 푸는 용도로. 난 가끔 동네 청원 경찰 역할을 하곤 했다. (포토그래퍼 rve around)
▦플레잉 카드
장기 여행은 기다림을 강요한다. 공항에서, 기차역에서, 막힌 도로 상에서, 여러 장소와 방식으로 인내를 시험한다. 책을 읽고 넋 놓다가 지쳤을 때, 카드는 시간 죽이기의 고수다. 호스텔에선 사교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전 세계인을 하나로 뭉치게 하는 묘수가 바로 게임.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대부분 게임의 규칙은 같다. 저녁 내기 정도의 도박성을 곁들이면, 집중력과 재미는 배가 된다. (여행 칼럼니스트 강미승)
▦의외로 쓸모 없는 여행 아이템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frideameetssomeon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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