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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의 길 위의 이야기] 잃어버린 필체

입력
2016.08.2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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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하는 일에 더 탄력을 받기 위해 따로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예술인들이 주변에 많다. 나는 쭉 살고 있는 집에서만 일했다. 결론은 무능하기 때문인데, 운명이다 여기며 어떻게든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갖기 위해 궁리하게 된다. 집에서만 일하다 보니 여행 가방 속에 노트북을 챙겨 넣지 않아도 되어 어딜 가든 짐이 가벼워서 좋다. 그 동안엔 바깥에선 한 자루의 펜과 메모장이면 충분했는데, 이젠 그 둘마저 휴대전화가 대신하고 있다.

남들보다 훨씬 늦게 휴대전화를 쓰기 시작한 나는 강연이나 대화 중에 사람들이 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늘 이상하다 여겼다. 그들이 메모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그랬으니 한 시간 내내 전화를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에게 보내는 시선을 그들이 봤다면, 나를 ‘상당히 불쾌한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이다. 참 편한 세상이 되었지만, 관심을 갖고 둘러보니 편리함을 거부하는 사람이 뜻밖에도 많다. 그들은 아직도 고전적인 방법으로 소통하고, 손으로 글씨를 쓴다. 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했던 스마트폰도 일찌감치 폴더로 바꿨다. 예전엔 나도 필체가 좋다는 말을 종종 들었는데, 펜을 쥘 일이 줄자 글씨가 점점 뒤틀리더니 병상에서 쓴 것처럼 보인다. 잃어버린 필체를 되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요즘엔 의식적으로 펜을 들고 있다. 그러자 소신껏 속도를 늦춰가며 살고 있는 사람처럼 내면에서 안정감이 느껴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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