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사정책硏 연구 결과
최근 10년간 수사 중 자살 83명
공직자ㆍ사회지도층이 72% 달해
“지위 높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평판 상실 불안감 극에 달해”
조사 전후 심리 상담 받게하고
심리 불안정할 땐 도우미 필요
롯데그룹의 정점을 향하던 수사가 그룹 2인자인 이인원(69) 롯데 정책본부장(부회장)의 자살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피의자 조사 전ㆍ후 심리상담을 하거나 신변보호관을 붙여 자살을 방지해야 한다는 연구결과가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4년 12월 발표한 ‘검찰 수사 중 피조사자의 자살 발생원인 및 대책 연구’에서 연성진ㆍ안성훈 연구위원은 사회적 지위가 높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실패와 좌절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약해 검찰 수사과정에서 심리상담을 하거나 신변보호관을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에 따르면, 2004년 1월~2014년 7월 수사 중 자살자 83명 가운데 공직자나 사회지도층 등 화이트칼라 비율이 72%에 달한다. 25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인원 부회장과 같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화이트칼라 피의자는 수사 중 언론보도를 통해 구체적인 혐의사실 등이 널리 알려져 평생 일궈온 신뢰를 잃게 된다는 불안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는 것이다.
연구위원들은 수사 도중 피조사자가 자살에 이르게 된 원인으로 9가지를 제시했다. “다 내 잘못이다”라고 인정하며 자살로 도피하는 ‘회피형 자살’, 가족 등에게 이해를 구하고 자신의 행위가 수용되기를 기대하는 ‘이해형 자살’, 죽음으로 문제상황을 해결하려는 ‘해결형 자살’, 자신의 죽음을 통해 남아있는 가족 등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는 ‘배려형 자살’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문제를 일으킨 타인을 원망하고 분노를 표출하려는 ‘비난형 자살’, 자신에게 고통을 가한 사람에게 심리적 부담을 주기 위한 ‘각인형 자살’, 누군가의 구체적인 비행이나 범죄를 알리기 위한 ‘고발형 자살’, 죽음을 통해 권력자에게 상황을 전달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탄원형 자살’, 우울증이나 만성알코올중독 등으로 인한 ‘정신장애형 자살’도 꼽힌다.
이들은 피조사자의 극단적인 선택을 막기 위해 수사관과 피의자 등에게 심리테스트를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피의자에게는 ‘과거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이 세상에서 없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가족이 있는 한 아무리 힘든 일도 이겨낼 수 있다’와 같은 항목에 답하도록 하고, 수사관 등에게는 피의자가 전에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는지, 언론보도로 인해 피의자가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도록 하는 식이다.
이들은 또 “조사 전후 심리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하거나 조사과정에서 심리가 불안정할 때에는 신변보호관을 지정하여 자살을 방지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통상 피의자나 참고인이 자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수사기관이 긴급체포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 신병처리를 앞당기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이에 더해 집으로 돌려보낼 때에도 검찰 직원이 집까지 동행해 가족들에게 심리상태를 알려주며 보호를 요청하고 있다.
박지연 기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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