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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ㆍ무전유죄 해결하란 국민의 뜻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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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무죄ㆍ무전유죄 해결하란 국민의 뜻이겠죠”

입력
2016.08.2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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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안되는 사건만 맡아 생활고

포털사이트 통해 후원금 밀물

시민 9000명이 3억원 보내와

“뜻있는 변호사들과 재단 만들어

형사사법피해자들 적극 도울 것”

박준영 변호사가 22일 경기 수원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한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오르는 폭염에도 선풍기 한대에 의지한 채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박준영 변호사가 22일 경기 수원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사건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 그는 한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오르는 폭염에도 선풍기 한대에 의지한 채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한낮 최고기온 36도. 사상 최고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 22일 낮 경기 수원의 한 사무실. 박준영(43) 변호사가 낡은 선풍기에 의지한 채 사건 조서를 들춰보고 있었다. 부산에서 살인사건에 연루돼 21년을 감옥에서 살고 나와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 한 남성의 기록이었다. 초췌한 모습으로 모자를 눌러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서류를 살피는 그의 눈빛만은 살아있었다.

그가 또 맡게 될 재심사건의 하나일까?

‘재심’ 전문 공익 변호사로 이름을 날리던 박 변호사가 생활고에 빠졌다고 해 주목 받고 있다. 그는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돈이 없어 사무실을 뺀다”는 글을 올렸다. 돈과 명예를 누리며 풍족한 삶을 살 것만 같은 변호사가 파산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 ▦익산 택시기사 살해사건 ▦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 소위 ‘돈 안 되는’ 사건만 맡아온 때문이다.

현재 그에게 남은 건 월세 55만 원짜리 아파트 보증금 3,000만원이 전부다. 사무실 보증금 2,000만원은 월 임대료 165만원이 10개월 가까이 밀려 거의 바닥났다. 리스로 쓰던 에어컨, 복사기, 팩스, 정수기 등은 반납한지 오래다. 무료변론 등을 하며 끌어다 쓴 은행 빚은 3억 원으로 불었다. “자초한 일이고 결국 이리 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혹했다.”

더위에 시든 것처럼 의욕을 잃어가던 박 변호사에게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가 지난 11일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후원금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고 28일 현재 9,000여 명이 건넨 성금이 3억 원 넘게 모였다. 잇단 법조비리로 사법계의 신뢰가 추락할 대로 추락한 이때, 의로운 변호사를 돈 없고 힘 없고 백 없는 서민들이 살린 것이다. 박 변호사는 “사법불신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해결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의 사연을 사무실에서 만나 들었다.

-국민의 후원과 응원이 대단하다.

“요즘 하루 2~3시간밖에 잠을 잘 수가 없다. 경험해보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당황스럽다. 국민들의 격려에 대한 흥분, 앞날에 대한 설렘, 앞으로 삶에 대한 고민 등이 크다.”

-돈과 명예를 탐하다 추락하는 변호사들이 판친다. 국민들은 그들과 다른 박 변호사의 모습을 본 것이 아니겠는가?

“건방지거나 겸손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사람은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수석으로 고시를 패스하고 연수원 1, 2등으로 졸업했다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다. 제게도 섬뜩하리만큼 놀라운 악성이 느껴질 때가 문뜩문뜩 있다.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람들에 대한 비난과 안타까움, 비판은 다른 분들과 다르지 않다.”

-법조인들의 비리,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냉정하게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직업적 양심이나 윤리에 대한 설정이 제대로 안 돼 있다. 내 능력과 내 가족의 도움으로, 내가 잘나서 사법고시를 패스했다고 생각하면 자기와 자기 가족 이외에 우리 사회는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럴 때 비도덕적인 주관적 양심을 사회 전반의 객관적 양심이 보완해야 한다. 주관적 양심이 문제점을 보일 때는 객관적 양심과 원칙으로 단죄해야 한다.”

박준영 변호사가 22일 경기 수원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사연들을 소개하고 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박준영 변호사가 22일 경기 수원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시민들의 사연들을 소개하고 있다. 유명식기자 gija@hankookilbo.com

-변호사는 어떻게 됐나?

“시골의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났다. 사실 어머니는 중학교 2학년이던 1988년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재혼했다. 방황했고 가출도 많이 했다. 술 먹고 때리는 아버지가 싫어 집을 뛰쳐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적 내 손을 잡고 ‘아들은 크게 될 인물’이라고 격려해주시던 생전 어머니의 말씀이 나를 붙들었다.

지방대에 간신히 들어가 군대에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 고시를 준비하던 선임을 만났다. 고시만 된다면 인생이 달라질 것 같았다. 돈도 벌고 유명해 진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전역한 뒤 대학을 때려 치고 선임을 따라 신림동에 들어갔고, 5년 만에 고시에 합격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다시 이 세계에서 비주류가 돼 있었다. 받아주는 곳이 없어 수원의 선배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을 시작했고 건당 20만~30만원인 국선변호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다 2008년 1월 ‘수원노숙소녀사건’을 운명처럼 만났고 억울한 누명을 쓴 이들의 사연을 직접 경험했다.”

-재심사건 등에 눈을 뜬 직접적인 계기가 있나?

“합격커트라인보다 단 1점 더 받아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1점차로 떨어진 사람과 내가 다를 바가 뭐가 있나. 난 행운이 있는 사람이다. 그 행운을 준 우리 사회에 보답하려 하는 것뿐이다. 어려운 과정을 알기에 사회적 약자의 억울한 사연에 눈길이 가는 것일 수도 있겠다.”

-국민들의 물질적인 지지와 응원을 받으면서 어쩔 수 없이 ‘공인’이 됐다.

“내가 그 동안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삶을 살아 왔는지 두렵고 떨린다. 나의 선택과 판단이 잘못됐을 때 쏟아질 비난과 비판의 무게도 이전보다는 훨씬 더 무거울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짐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잘못된 판단을 내린 국가공권력에 맞서는 일이어서 무섭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돈까지 받아놓고 피한다면 미친 놈 되는 거 아니겠나.”

-국민의 성원은 어디에 쓸 생각인가?

“일단 빚을 좀 갚고….(웃음) 국민들이 저를 살려준 의미대로 제대로 한 번 살아보고 싶다. 제 사연이나 하는 일 등이 알려지면서 정말 많은 분들이 개인적으로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다.(사실 인터뷰 중에도 2,3분에 한번 꼴로 사무실에 전화가 걸려왔다.) 실망시키지 않도록 열심히 뛰겠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다면.

“뜻있는 변호사들과 의견을 모아 공익법인이나 재단을 만들어 형사사법피해를 당한 국민들을 위해 활동할 생각이다. 사법부 처벌을 받지 않은 권력층으로 인해 피해를 본 국민들도 적극 돕겠다.”

글ㆍ사진 유명식 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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