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선 ‘마시는 수액’ 권장
국내 의료계 인식 개선 필요
흔히 ‘링거’라고 불리는 수액 시장에 작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혈관에 바늘을 꽂아 주사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시거나 위에 직접 넣어주는 형태의 수액을 찾는 환자와 의료진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이런 새로운 형태의 수액 제품 매출이 2011년 85억원에서 2013년 167억원, 지난해 237억원으로 5년간 연평균 약 30%씩 성장했습니다. 제약업계를 먹여 살린다는 건강기능식품 시장 성장이 연평균 10%대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속도입니다. 마시는 수액 제품을 공급하는 업체는 단 2곳. 시장의 절대 규모는 작지만, 이 같은 변화가 우리 의료계에 던지는 의미는 작지 않습니다.
고농도 약물을 몸에 직접 투여하면 혈관이 손상되거나 통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수액으로 약물을 희석시켜 주입하지요. 약물을 체내 구석구석 나르는 운반 기능도 수액의 몫입니다. 그러나 수액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영양 공급입니다. 수술을 앞둔 금식 환자나 식사가 불가능한 중증 환자가 영양을 공급받는 유일한 경로가 수액입니다.
사실 국제학계에선 수액으로 영양을 공급할 때 마시거나 위에 관을 연결해 주입하는 방식(경장영양)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계속 ‘섭취’해 환자가 기본적인 삶의 질과 최소한의 위장관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나 유독 국내 병원에선 혈관 주사로 영양을 공급하는 방식(정맥영양)을 선호합니다. 의료진의 손을 덜고 환자를 가급적 빨리 퇴원시켜 병실 회전율을 높이려는 것입니다. 경장영양 수액을 쓰면 의료진이 환자를 더 세심히 살펴야 하고, 그만큼 입원 기간도 길어지니까요.
한국경장정맥영양학회 전문가들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소화기관으로 음식이 들어오지 않으면 장 세포가 퇴화하면서 유익한 균이 사라져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환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칩니다. 실제로 유럽 병원에선 경장영양과 정맥영양 비율이 50대 50입니다. 미국에선 경장영양 비율이 더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35대 65로, 정맥영양 수액이 훨씬 많이 쓰입니다.
경장영양 수액 판매로 제약사가 얻는 이득은 크지 않습니다. 200㎖짜리 한 팩 가격이 2,000여원에 불과합니다. 이 시장을 지키는 업체들이 주목하는 건 가격보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입니다. 오현오 JW중외제약 마케팅팀장은 “이익률이 다른 약물에 비해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선진 의료 트렌드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틈새시장 제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최근 5년 간 이어지고 있는 경장영양 시장 규모 증가세가 의료 선진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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