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선 흔한 시네마 키드가 아니다. 영화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20대 후반 남들보다 늦게 영화감독을 꿈꾸게 됐다. 장편영화 데뷔식은 제법 빨리 치렀다. 35세였던 2006년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애정결핍’)이라는 영화로. 당시 청춘스타로 이름 높던 봉태규와 중년배우로서 대중의 사랑을 받던 백윤식이 함께 출연한 영화였다. 한 여자를 두고 부자가 처절한 애정 경쟁을 펼친다는 내용의 이 코미디 영화는 수능 대목을 겨냥해 개봉했으나 흥행 쓴 잔을 마셨다.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애정결핍’은 전국에서 59만3,277명 또는 49만9,612명을 모았다. 집계 방식에 따라 수치가 다른데 감독은 “가장 큰 수치를 믿고 싶다”고 했다. 흥행 참패는 충무로의 ‘관심 결핍’으로 이어졌다. 두 번째 작품이 개봉하기까지 8년 가량이 걸렸다. 2014년 극장가를 찾은 ‘끝까지 간다’로 345만305명을 모으며 관객들의 갈채와 함께 평단의 호평을 들었다. 데뷔작이 은퇴작이 될 뻔했던 감독의 극적인 컴백이었다.
세 번째 작품은 올 여름 흥행 대전에 뛰어들었다. 빅4라 불리던 충무로 화제작 중 가장 늦게 개봉(10일)해 28일까지 602만6,931명이 찾았다. 먼저 개봉한 ‘덕혜옹주’(522만1,561명)을 앞지르고 ‘인천상륙작전’(691만9,099명) 추월까지 넘보고 있다.
재난영화 ‘터널’로 흥행 홈런을 쳤으나 지난 24일 서울 팔판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성훈 감독은 차분한 얼굴이었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좋아해주셔서 행복하기는 하나 할 일을 뺏긴 것 같아 조금씩 우울해지고 있다”며 “역시 현장에서 일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터널’은 자동차로 귀가 중 터널이 무너지면서 생사의 기로에 선 한 남자의 생환기를 그린다. 언론의 무정한 특종경쟁과 돈과 효율만 따지는 한국사회를 비추며 생명의 의미를 되묻는다.
“족쇄 풀고 한계 뚫는 이야기에 매력”
-세월호 참사와 너무 연결 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나.
“비극적 재난으로만 영화가 읽힐까 봐 걱정스러운 점도 있었다. 관객들이 웃어야 할 때 웃고, 같이 울어야 할 땐 울어야 할 텐데 하나의 틀만 제시되면 즐기기 힘들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즐겨달라고 하기에는 부담스러웠다.”
-한 번 흥행하면 자만할 만도 하다. 혹시 경계심이 있었나.
“글쎄 아직 자만을 부릴 정도의 위치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경계해야 할 점은 분명히 있었다. ‘끝까지 간다’ 찍을 때, 이전 작품으로 신뢰를 못 줘서 고민을 많이 한 뒤 제작자 등을 만났다. ‘끝까지 간다’가 성공하면서 이번 영화는 덩치가 더 커지고 사람들이 내 말을 더 잘 들어줬다. 내가 준비를 잘 안 해도 사람들이 내 말에 수긍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인들에게 예전처럼 모니터링하고 조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터널’을 만들겠다는 결심은 언제 했나?
“‘끝까지 간다’ 개봉한 뒤인 2014년 8월말쯤 연출 제안을 받았다. 공백기에 써놓았던 다른 시나리오를 매만지고 있을 때 원작을 읽었고 2~3주 고민했다. 카페에서 사람 기다리다 동명 소설을 읽고선 많이 울었다. 너무 아프고도 끔찍한 현실이었으니까. 그런데 영화로 찍을 자신은 없었다. 촬영하면서 마음 아프고, 보면서도 또 아파서 감당을 못할 듯했다. 그래서 포기했는데 아내가 ‘당신이 관심있는 부분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연출을 제안했다. 유머나 블랙코미디, 아이러니한 상황을 추가하면 만들어 볼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점에서 원작에 매력을 느꼈나.
“‘터널’은 ‘끝까지 간다’의 연장선에 있다고도 생각했다. 어떤 한 명이 족쇄 같은 상황을 풀고, 자기의 한계를 뚫고 지나가는 이야기들이 재미있었다. ‘끝까지 간다’를 끝낼 무렵에 ‘다음에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끝까지 간다’는 직선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다. ‘터널’은 ‘끝까지 간다’처럼 한 사람의 사연 같지만 어느 순간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시스템이나 사회로 확장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염두에 둔 배우는 누구인가.
“당시 떠올린 배우는 없다. 투자배급사인 쇼박스의 투자 담당자가 첫 만남 때 ‘‘터널’ 제목 밑에 하정우 이름 박히면 느낌 있겠네’라고 하더라.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 전 서로 힘을 내자는 차원에서 나온 농담이었다. 나도 ‘좋겠는데?’라고 답했지만 하정우가 워낙 바쁜 친구이고 스케줄이 다 차 있었다. 제작사도 불가능할 거라고 했는데 제작 준비를 하다 보니 하정우의 일정이 비었다. 우리 영화가 한 공간에서 찍을 수밖에 없으니 (짧은 일정으로도 가능해) 기회가 왔고, (하정우가) 흔쾌히 받아줬다.”
-제목이 좀 심심하다는 반응도 있다. 바꿀 생각은 없었나.
“나는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똑같은 문제 제기가 (투자사)내부에서 있었고, 대안 몇 개가 제시됐나 보더라. 그래도 개봉하기 전 ‘블라인드 시사’(관객들에게 영화 정보를 알려주지 않고 반응을 얻기 위해 하는 시사)를 했는데 ‘터널’이 좋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나왔다. 나는 심심한 제목이라서 좋았다. 요즘 내비게이션으로 ‘전방에 터널입니다’라는 말을 주구장창 듣지 않나. 나만의 해석인데 터널은 어둡지만 결국 끝에 빛이 있다. 반대편에 반드시 구멍이 있으니까.”
-국민안전처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등의 해석이 있다. 의도가 있었나.
“장관은 여자 아니면 남자인데 나는 여자를 택했다. 장관이니 젊은 사람은 아닐 테고. 중년 남자배우가 연기했으면 전직 대통령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배우 김혜숙이 어울리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가 강단이 있으면서도 귀엽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와 같은 질문을 해야 하는데 그 분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을 것이다.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가 물론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영화를 만들면서 뭔가를 피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피해야 한다면 다른 혐오스러운 장면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정우가 애드리브를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에게 많이 맡기는 편인가.
“배우마다 다르다. 배우의 특성이 있으니까. 무작정 뛰어 놀게 해야 하는 분이 있다. 특히 이번엔 하정우 혼자 하는 연기가 많았다. 촬영 전 여행도 같이 가고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혼자 연기하다 시나리오로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도 하정우도 즉흥적으로 생각나는 대사가 훨씬 사실적일 거라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한 장면을 찍는데 하정우 혼자 20분을 연기한 적도 있다. 하정우가 집에서 미리 생각했는지 현장에서 순간 떠올렸는지는 모르지만 생동감 있는 장면들이 나와 큰 도움이 됐다.”
-하정우랑 어디로 여행을 갔나.
“처음엔 영화 ‘아가씨’의 일본 촬영 현장에 2박3일 놀러 갔다. 응원 차 구경 차 가서 술 마시면서 조금씩 친해졌다. ‘아가씨’ 촬영 마치고 오사카로 3박4일 워크숍을 갔다. 모텔이나 펜션 잡아놓고 하는 워크숍은 너무 답답하니 좀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한국에선 하정우를 알아보니까 일본에 갔다. 오사카 카페 돌아다니며 수다 떨다 밥 먹고 맥주 한 잔하며 영화 이야기를 했다. 수다 떠니까 시나리오가 탄탄해지고 배우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놀이터를 일터 삼고파 영화 택해
김 감독은 한국외국어대학에서 헝가리어를 전공했다. 그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노태우 대통령 북방정책의 희생양”이라고 말했다. 대학 진학 당시 동유럽 첫 수교국가가 헝가리여서 헝가리 특수를 누리리라는 기대가 전공 선택에 작용했다는 것이다. “열기가 금방 식더라. 과 동기들끼리 만나면 ‘우린 북방정책에 희생됐다’고 말한다. 그래도 다들 제 꿈을 이뤘다. 동기 중에 기자가 있고, 비행기 기장도 있다. 헝가리? 한 번도 못 가봤다. 영화 녹음 작업 때문에 체코 프라하 갔을 때 꼭 부다페스트를 들르려 했는데 결국 일정이 안 맞아 못 가봤다.”
어려서부터 영화광은 아니었다. 강원 강릉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그는 친척이 극장을 운영하는 덕분에 영화를 많이 봤다. “강릉에 개봉관 3개, 재상영관 1개가 있었는데 친척이 초대권을 주어서 매주 주말 4곳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보통 관객처럼 소피 마르소나 청룽(성룡), 영화 ‘람보’를 보며 환호하던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 뒤 학사장교로 군대를 제대할 무렵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환란 무렵이어서 구직이 힘들 때였고 무엇보다 “직장을 다니기가 싫었다”고 했다. “제대하면 내 인생 땡, 너무 재미 없을 거 같더라. 재미 없는 인생을 살 수 없으니까 조금 더 놀고 싶다고 생각했다. 스물여덟 살에 놀이터 같은 곳을 내 일터로 만들 수 없을까 해서 영화를 하겠다고 했더니 집안에서 ‘아이구 쟤가 사고를 치는구나’라며 걱정을 많이 했다. 단편영화를 만들면서 영화가 재미있다는 걸 더 느끼게 됐다.”
-단편영화를 어떻게 만들었나.
“한겨레신문이 운영하던 6개월짜리 영화제작학교를 다녔다. 유학 준비를 했는데 입학에 필요한 포트폴리오가 필요했다. 단편을 찍는 동안 가계가 기울어서 유학을 포기했고 충무로 연출부에 발을 디디게 됐다.”
-단편은 몇 편 정도 찍었고, 어떤 내용이었나.
“‘주유소 습격사건의 전모’와 ‘아’라는 단편을 만들었다. 앞엣것은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비튼 내용이다. 주유소를 습격하는 그 친구들이 어디서 왔을까, 하는. 그들은 흔히 말하는 ‘텍사스촌’(윤락업소 밀집지역) 출신인데 그곳에 유전이 깔려 있다는 설정이었다. 국제유가의 기준 중 하나로 텍사스 중질유가 있지 않나. 텍사스가 미국이 아니라 서울 길음동에 있다, 길음동은 알고 보면 기름동이라는 식의 내용을 담은 5분짜리 영화였다.”
-2006년 데뷔 감독들이 워낙 많아 ‘지금 감독 못 되면 평생 못한다’는 말도 있었다.
“많은 분들이 데뷔했고, 그런 내용을 다룬 기사도 많이 봤다. 그런데 서운하기도 했다. 그때 입봉(감독 데뷔) 못한 분들도 많다. 충무로에 돈이 워낙 많이 들어와 (시나리오)초고 쓰자마자 막 투자 받을 때였다. 내 경우에도 연출 제안을 받고 1년이 채 안 돼 영화를 개봉했다. 그게 결국 내게 8년이란 공백을 만들어줬지 않나 생각한다.”
-오랫동안 다음 작품을 못 만들어 불안감은 없었나.
“물론 ‘애정결핍’ 개봉했을 때는 ‘왜 사람들이 안 알아주지?’라고 생각했다. 5~6개월 지나고부터 내 영화의 단점들이 보여서 부끄러웠다. 이 정도밖에 준비가 안됐고, 이것밖에 표현을 못하는 감독이었으니 좋은 배우가 와서 고생했겠다 싶어 미안해졌다. ‘애정결핍’을 그 다음부터 못 봤다. 얼굴이 빨개져서 두 컷도 못 보겠더라. 그때부터 반성을 많이 했다. 창피해서 사람들 만나기도 싫었다. 그 이전까지는 감독 타이틀이 신기해 보였고, 그걸 조금 즐겼지 않았나 싶다.”
-결혼은 언제 했나. 감독 데뷔가 빨라 주위의 기대도 컸을 듯하다.
“스물아홉에 결혼했다. 캠퍼스 커플이었다. 동갑인 아내가 직장이 있었고 난 더부살이를 했다. 아무리 신인 감독이 많이 나올 때라 해도 영화판에서 감독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생각하면 데뷔 자체가 축복이다. 그 당시엔 장원급제라도 한 듯 들뜬 기분이었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감독이 되겠다 마음 먹고 유명 감독들의 영화를 챙겨보게 됐나.
“기계적으로 찾아보게 됐다. ‘프랑수아 트뤼포도 봐야 하고 누구도 봐야 한다’고 말해줘서. 그런데 5분만 봐도 졸리더라. 그래도 (에단, 조엘)코엔 형제 감독 영화들은 매우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등장인물들이 갑자기 느닷없는 상황에 던져지는 게 좋았다. 앨프레드 히치콕도 그래서 좋았다.”
-친한 감독들이 누구인가.
“이해준(‘나의 독재자’), 조근식(‘품행제로’), 강이관(‘범죄소년’), 김태용(‘만주’) 감독이 가장 친하다. 다 탁구클럽 멤버다. 예전에 서로 ‘루저 감독들’이라고 하면서 밤에 함께 탁구 레슨을 받았다. ‘끝까지 간다’ 촬영할 때도 같이 잘 놀러 다녔다. 지금은 각자 좀 바빠서 두 달에 한번 정도 모인다. ‘탁구 칠 사람 모여라’하며 번개를 한다. 밤에 탁구를 쳐서 ‘야탁 모임’이라 부른다. 예전엔 다들 시간이 남아서 대한항공 소속 전직 선수에게 레슨을 받기도 했다. 시나 구에서 주최하는 아마추어 대회에도 같이 출전했다. 다 탈락하긴 했지만.”
“해피엔딩? 결국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 뒤 개봉한 ‘끝까지 간다’와 ‘터널’ 둘 다 세월호의 영향을 받았다.
“‘끝까지 간다’의 제목은 원래 ‘무덤까지 간다’였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다. 영화 내용이 너무 부정적인데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 힘든 시기여서 제목을 바꿨다. 결과적으로는 잘 됐다. 난 재난영화를 찍더라도 할리우드처럼 만화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현실을 반영한 내용을 담고 싶었다. 그렇다고 어떤 장면은 뭘 의미했다고 말하는 건 중요하지 않은 듯하다. (의미 부여는) 보시는 분의 몫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사람이 폐쇄된 공간에서 사투를 벌인다는 ‘터널’의 설정이 외화 ‘베리드’나 ‘패닉룸’, ‘폰부스’를 생각나게 한다. 참고한 영화가 혹시 있나.
“뭘 보면서 참고하는 성격은 아니다. 물론 이미 본 영화라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끝까지 간다’를 나중에 보니 코엔 형제의 데뷔작 ‘분노의 저격자’가 엄청나게 영향을 줬더라.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민망할 정도였다. ‘터널’도 마찬가지 아닐까.”
-‘터널’의 해피엔딩을 못 받아들이는 분들이 꽤 있다.
“기다렸던 질문이다. 마지막 장면은 시나리오 단계부터 고민이 되었던 대목이다. 대자본이 투여되는 영화에서 엔딩을 찝찝하게 끝내는 건 힘든 일이다. 이 영화를 두 시간 동안 본 관객들을 위해, 배반으로 보일지언정 결과적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도 반칙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딸과 강아지까지 나오면 안 된다고. 정수(하정우)와 세현(배두나)이 터널을 마주할 때 긴장을 한다. 정수는 터널에 매몰됐던 트라우마를 극복한 게 아니라 애써 웃는다. 그들이 차를 타고 가는 곳은 높은 교각 위다. 왜 교각 위일까 질문을 던지고 내 의도를 봐 주셨으면 좋겠다. 둘은 행복해지고 싶지만 하나의 터널을 빠져 나왔을 뿐 변한 건 없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정우진 인턴기자(연세대 사회학과 4년)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