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검찰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나 정권의 후반기로 접어들면 어김없이 검찰이 주요한 정치적 사안의 핵심변수로 등장한다. 검찰의 수사방향과 결과에 따라서 차기 대선을 포함한 정치적 지형이 급변하기도 하고 유력한 정치인의 정치적 운명이 갈리기도 한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아서 다분히 정치적 사안이라고 할 수 있는 우병우 민정수석과 이석수 특별감찰관에 대한 사건이 결국 검찰의 수사를 기다리고 있다. 사건의 배경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추측과 음모론적인 얘기들이 나돈다. 어떤 소설보다 더 흥미진진한 정치기사들이 언론을 장식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그 스토리들이 사실일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온 것은 앞으로 1, 2년 사이에 전개될 더욱 드라마틱한 정치소설의 서막 정도에 해당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이유는 서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는, 다른 선진국에 비교해서도 예외적으로 강력한 검찰의 권한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의 독점을 통해 나오는 검찰의 힘은 일반인들이 막연히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막강하다. 비교적 최근에서야 법원에 의한 영장실질심사를 통해 구속 여부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검사의 판단에 의해 구속 여부가 사실상 결정된다고 믿고 있고, 검사가 청구한 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는 것은 그것 자체가 뉴스거리가 된다.
두 번째는 그와 같이 막강한 검찰의 힘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정치권력의 유혹이다. 정치권력의 입장에서 가장 손쉽게 원하는 바를 이루는 방법은 검찰권을 이용하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를 통한 정치적 사안의 해결은 표면적으로는 부패의 척결, 정의의 실현 등과 같은 명분을 쉽게 덧입힐 수 있으므로 더할 수 없이 좋은 정치적 수단이 된다. 우리나라처럼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엄격한 규범체계가 만들어져 있는 국가에서 그 정치적 수단의 효용은 더욱 높아진다.
세 번째는 엄격한 상명하복의 질서가 유지되고 있고, 인사와 승진 여부에 의해 검사로서의 삶의 성공 여부가 철저하게 차별화되는 검찰 내부의 상황이다. 현재의 인사와 승진 시스템 하에서 검찰조직은 어쩔 수 없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고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금처럼 정권의 후반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검찰의 수뇌부는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저울질할 수밖에 없다. 조직으로서 검찰은 어느 기관에 비해서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으로서 검사는 인사와 승진의 국면에서는 마찬가지로 나약한 개인일 뿐이다. 이 문제를 검사 개인의 정의감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념에 의지해서 해결하기에는 제도적 실패의 위험이 너무 크다.
문제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정치의 입장에서나 검찰의 입장에서나 서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데 있다.
정치의 입장에서는 공동체의 가치 배분에 관한 결정이어서 마땅히 국민에게 민주적 절차에 따라 권한의 위임을 받은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들이 법률가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정치가 그 역할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검찰의 입장에서도 정치적 사건의 처리와 개입을 통해 소수의 몇몇 검사들은 혜택을 입겠지만, 묵묵히 맡은 사건을 처리하는 많은 검사는 체계적으로 조직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검찰의 개입을 통한 정치적 사건의 해결은 많은 경우에 검찰 입장에서도 전혀 이롭지 않은 후폭풍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워낙 오래되고 구조적인 문제이어서 이 문제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경찰수사권독립 등의 방법으로 과연 해결될 수 있을지는 필자도 의문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정치권과 검찰 내부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해결을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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