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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사퇴 기적 이룰 것”VS “치킨게임, 서로에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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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장 사퇴 기적 이룰 것”VS “치킨게임, 서로에 상처”

입력
2016.08.2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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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학내 분쟁이 한 달을 맞았다. 대규모 경찰력 투입에 대한 비판 여론에 학교가 추진한 영리사업은 중단됐지만, 학생들이 ‘총장 사퇴’까지 요구하며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총학생회를 배제하고 자발적으로 결집한 ‘느린 민주주의’는 학생들의 의사를 관철시킨 원동력이었지만, 조직력이 없어 사태의 출구를 스스로 닫는 한계도 노출하고 있다. 농성을 지지하는 한 재학생과 학교정상화를 촉구하는 졸업생의 엇갈린 시선을 통해 ‘느린 민주주의’ 실험의 여러 단면들을 들여다봤다.

26일 오전 졸업식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 학생 측이 최경희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내 건 졸업장 반납 게시물 앞으로 학생들과 가족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26일 오전 졸업식이 열린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정문에 학생 측이 최경희 총장 사퇴를 요구하며 내 건 졸업장 반납 게시물 앞으로 학생들과 가족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거짓말에 넌덜머리… 학교 독단에 양보하는 선례 안돼”

이화여대 4학년 김연경(23ㆍ가명)씨는 살면서 시위라는 걸 해 본 적이 없다. 이른바 ‘꿘(운동권)’도 아니고 학생회 활동에 몸담은 경험도 없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28일 이후 이따금 학교 본관을 찾아 학우들과 책을 읽으며 밤을 지새우거나 집회가 열리는 날엔 꼬박꼬박 얼굴을 비친다.

취업 준비와 과외 아르바이트까지 미루면서 김씨가 학교 문제에 열성을 보이는 이유는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총장이 평생교육단과대학(미래라이프대) 설립 계획을 접었으니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하지만 미래라이프대는 파행을 거듭한 학교 운영의 단면일 뿐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김씨는 대학을 다니면서 학교가 돈벌이 공간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업시설인 ‘이화파빌리온’ 건립, 산업연계교육활성화선도대학(PRIME) 도입 등 영리사업은 그렇다 쳐도, 학점 3.75를 넘긴 학생에게 50만원씩 주던 장학금을 없애고 24시간 문을 열었던 중앙도서관 운영을 폐지하는 등 학생들의 민생 문제에서도 학교는 독단을 일삼았다. 김씨는 26일 “장학금 폐지 얘기를 듣고 믿기질 않아 장학처에 문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며 “학생들이 반발 할 때마다 ‘사실무근’이라고 달랜 뒤 갑자기 사업을 강행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고 성토했다.

학교 측이 지난달 30일 캠퍼스에 경찰 1,600명을 끌어 들인 사건은 김씨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그는 “사법 처리가 되지 않게 돕겠다는 등 학교의 수 없는 거짓말에 넌덜머리가 난다. 더는 남아있는 기대도, 신뢰도 없고 총장 사퇴만이 답”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학우들과 10명 내외의 소그룹을 만들어 향후 대응 방안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그는 “매일 자정을 넘겨 논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 우리의 열정이 식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출구전략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농성장에서도 “이러다 흐지부지된다. 총장 사퇴 거부에 대비한 전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는 “최 총장이 진정한 소통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먼저 퇴로를 여는 선례를 남긴다면 앞으로도 양보만 강요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리더가 없는 우리가 여기까지 온 자체가 기적이고 느린 민주주의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총장이 물러나는 또 다른 ‘기적’을 이룰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취준생, 학교 이미지 실추 우려도

올해 2월 이화여대를 졸업한 고유나(25ㆍ가명)씨는 요즘 동창들의 카카오톡 단체대화방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 사퇴를 주장하며 시위 동참을 요청하는 글이 자주 올라와서다. 고씨는 25일 “사퇴 요구에 동의하지 않지만 ‘그만하라’ 말릴 수도 없고 (방에서) 나가자니 대놓고 반대하는 것 같아 난감하다”고 했다.

고씨도 처음에는 후배들의 본관 점거농성을 지지했다. 이달 3, 10일 두 차례 열린 집회에 참석해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그룹 god(지오디)의 ‘촛불 하나’를 부르며 미래라이프대 반대를 외쳤다. 학교가 경각심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졸업장 반납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그는 “박수를 받는 지금이 물러나야 할 적기”라는 생각을 굳혔다. 학교 구성원들의 반발을 부른 사태의 단초가 재정 확보를 빌미로 대학을 자본에 종속시킨 독선 운영에 있는 만큼 총장 사퇴는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게 고씨의 주장이다. 그는 “한 번 이겼으니 총장까지 끌어내리자는 담론은 어설픈 군중심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며 “학교와 마찰이 있을 때마다 누군가의 퇴진을 요구하는 식으로 대응하겠다는 얘기냐”고 비판했다. 최 총장이 미래라이프대 설립 계획을 철회하고 경찰력 투입에 대해서도 사과하는 등 일부 물러서는 모습을 보인 점을 감안해 학생들도 협상 테이블에 앉아 학교의 미래를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씨는 “취할 것은 취하고 내놓을 것은 내놓으며 카드를 교환하는 과정이 협상의 기본인데 학생들은 강경 입장만 고수하며 사태를 기 싸움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현실적 고민도 있다. 자신을 포함해 당장 앞날이 걱정인 취업준비생들에게 사태 장기화는 원치 않는 시나리오다. 미래라이프대 백지화는 ‘학생들의 힘으로 불합리한 정부 사업을 되돌렸다’는 진심이 통했다. 그러나 총장 사퇴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명분이 아니다. 고씨는 “취업 면접을 앞둔 친구들 사이에서는 농성에 대한 개인 의견을 물을 수 있어 ‘예상 답변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며 “학내 분쟁이 길어질수록 학교 이미지가 깎여 사회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 같아 솔직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서로 앞만 보고 달리는 ‘치킨게임’에서는 누구도 얻는 것 없이 상처만 입을 뿐이에요. 대화와 협상이라는 민주주의 수단을 통해 학교 구성원의 마음을 한 데 모아야 할 때입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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