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감안 신동빈 회장 등 소환일정만 조정
검찰 “수사범위ㆍ방향 등은 큰 변화 없어”
롯데그룹의 2인자이자 신동빈(61) 회장의 최측근으로 꼽히던 이인원(69) 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26일 검찰 출석을 앞두고 돌연 목숨을 끊었다. 이날 이 부회장 조사를 거쳐 다음주부터 신 회장 등 오너 일가를 차례로 소환하려던 검찰은 향후 수사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갔다. 지난 6월 10일 시작된 롯데그룹 비리 수사가 그룹 총수인 신 회장의 턱밑까지 치달은 상황에서 중대 고비를 맞게 됐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7시11분쯤 경기 양평군 서종면 한 산책로에 쓰러져 숨진 채로 이 곳을 지나던 주민에 의해 발견됐다. 그는 넥타이와 스카프를 연결해 산책로 가로수에 목을 맸다가 줄이 끊어지면서 바닥에 떨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장 주변에서 발견된 이 부회장 차량에서 나온 A4용지 4매(1매는 제목) 분량의 유서에는 “롯데그룹 비자금은 없다.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와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 양평경찰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부검을 실시한 결과, 목이 졸린 흔적 이외의 손상은 없어 전형적인 목맴사로 추정된다”며 “고인의 행적조사 결과, 부검의 소견 등에 비춰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9시30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할 예정이던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을 접한 서울중앙지검 롯데그룹 수사팀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어떤 경우에도 일어나선 안 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났다”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고 고인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1973년 호텔롯데에 입사해 롯데쇼핑 대표를 지낸 뒤, 2007년 이후 그룹의 컨트롤타워격인 정책본부에서 일해 온 그는 롯데그룹 내 경영 비리나 총수 일가의 관여 여부 등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인사로 지목돼 왔다. 검찰로선 이번 수사의 ‘키맨’이나 다름없는 인물의 진술을 확보할 기회를 잃어 버린 셈이다.
검찰은 일단 롯데그룹 오너 일가에 대한 소환 일정을 조정키로 했다. 당초 검찰은 이번 주말 회의를 거쳐 신 회장과 신격호(94) 총괄회장, 신동주(62)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등의 출석일자를 다음주 중으로 확정, 당사자들에게 통보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검찰이 이 부회장 장례일정 등을 감안해 “소환일정 변경이 불가피해졌다”고 밝힌 만큼, 당분간 이들의 소환도 미뤄지게 됐다.
다만 검찰은 이로 인해 롯데그룹 비리 수사에 큰 차질이 빚어지진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범위나 방향 등은 이미 2개월 간의 수사를 거쳐 어느 정도 확정된 상태여서 변동 여지가 크지 않다”며 “(신 회장 등의 혐의 입증을 위한) 물적 증거가 많이 확보돼 있는 만큼 예정돼 있는 수사는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