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조건부 자율협약에 들어가며 4개월 간 경영정상화를 위해 몸부림을 치던 한진해운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목전에 섰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피하려면 1조~1조3,000억원에 이르는 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채권단 입장인데, 지난 4개월간 끌어모은 돈이 고작 4,000억원에 그쳐 채권단의 지원 사격을 더는 기대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채권단은 30일까지 각 채권금융기관의 의견을 받아 한진해운의 최종 운명을 결정한다는 방침이라 극적 반전의 가능성이 남아있긴 하지만, 채권단 내부에서는 한진해운의 법정관리 행(行)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우리나라 국적 해운사 2곳 중 1곳이 사라지는 것이어서 이에 따른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26일 산업은행은 전날 한진해운이 제출한 자구계획 내용을 공개했다. 채권단이 구조조정 기업이 제출한 자구안 내용을 대외에 상세히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자구안에 담긴 금액이 경영정상화를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공식화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한진해운의 자구안에는 채권단 요구액에 한참 못 미치는 ‘4,000억원 + 알파(α)’만이 담겼다. 대한항공의 유상증자로 4,000억원을 마련하되 추후 상황을 봐서 그룹 계열사나 조양호 회장의 개인적인 유상증자 등으로 1,000억원 추가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정용석 산은 부행장은 “채권단이 실효성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자금은 (조건이 붙지 않은) 4,000억원에 불과하며 한진의 부족자금을 1조원으로 가정하면 결국 채권단이 6,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야 하는 구조”라고 밝혔다. 산은 고위 인사는 “사실상 한진으로서도 더 지원하기 어렵다는 시그널을 채권단에 보낸 것으로 해석한다”고 말했다.
산은은 이날 채권단을 소집해 한진이 낸 자구안을 설명하고 30일까지 각 채권금융기관으로부터 한진해운을 정상화시킬지 법정관리로 보낼 것인지 최종 답변을 받을 예정이다. 채권단 지분율을 기준으로 75% 이상이 신규 자금 지원을 거부하겠다고 하면 한진해운은 법정관리 수순을 밟게 된다. 채권단은 법정관리를 준비하는 모습이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이미 1조원의 자금을 댄 채권단들이 담보도 없이 리스크를 안고 추가 지원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그 파장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한진해운이 상대하는 화주사만 1만6,000여곳에 이르는데 한진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당장 화주들은 맡긴 짐을 수송하는데 어려움을 겪어 물류대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비상계획 마련에 들어갔다. 해양수산부 관계자는 “한진해운 선박을 이용하지 못해 수출에 차질을 빚는 국내 업체들이 다른 국내외 선박을 이용해 수출할 수 있게 지원할 것”이라며 “또 한진해운 때문에 부산항을 환적항으로 이용했던 해외 선주들이 일본이나 중국으로 가지 않도록 부산항을 이용하는 글로벌 해운사에 환적비용을 할인해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세종=김진주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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