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 마르크스 이론가 베라르디
美 저널리스트인 에임스
전 세계서 동시다발로 발생하는
‘묻지마 살인’ 원인 파헤쳐
승자독식 이데올로기가
‘안전한 사회’ 약속 무너뜨려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
마크 에임스 지음ㆍ박광호 옮김
후마니타스 발행ㆍ520쪽ㆍ2만2,000원
죽음의 스펙터클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 지음ㆍ송섬별 옮김
반비 발행ㆍ300쪽ㆍ1만8,000원
“태어나서 줄곧 난 조롱과 증오의 대상이었고, 얻어 맞으며 살았어. 당신들, 그러니까 사회가 과연 내 행동의 죗값을 나에게 물을 수 있을까? (…)당신들이 눈을 뜨지 못한다면, 내가 평화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말로 설명해도 안 된다면, 총알로 그렇게 하겠다고.”(마이클 카닐)
1997년 12월 미국 켄터키주 웨스트 퍼두커에서 고교 1년생 카닐이 산탄총, 소총, 권총을 가지고 학교에 나타났다. 예배모임 중이던 학생들을 향해 연속 발사한 8발의 총알에 3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했다. 총격 직후 카닐은 총을 떨어뜨린 뒤 기도 모임의 리더에게 말했다. “제발 저 좀 쏴주세요”.
‘묻지마 살인’의 원인을 파헤친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이탈리아 마스크주의 이론가 프랑코 비포 베라르디의 ‘죽음의 스펙터클’과 미국 저널리스트 마크 에임스의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 두 저자가 이해할 수 없는 살인의 원인으로 동일하게 지목하는 것은 사회다. 신자유주의로 황폐해진 사회가 인간성을 말살하고 ‘묻지마 살인’을 부추긴다는 분석은 이미 여러 차례 나왔다. 그러나 저자들은 개인에게 드리운 체제의 그림자에 더 깊이 접근함으로써 이런 피상적인 도식을 깨려고 시도한다.
에임스는 ‘나는 오늘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에서 학교와 직장에 집중한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 학내 총격 사건이 본격화한 것은 1990년대 초반. 학내 분노 살인의 양상은 놀라울 만큼 일관된다. 일상의 대부분을 보내던 공간에 나타난 내성적인 성격의 살인자, 난사, 그리고 지역사회와 주변의 반응. “걔가 그럴 애가 아니에요”. 이어지는 언론의 분석마저 판에 박은 듯 똑같다. 비디오게임과 할리우드 영화, 혹은 편모슬하의 가정 환경이 공범으로 지목된다. 모든 것이 의혹의 대상이 되는 와중에 그 레이더망에 세밀히 포착되지 않는 중요한 공간이 있다. 바로 학교다.
2002년 미국 정부 보고서에 따르면 학교 분노 살인자들에 대한 프로필 만들기는 실패했다. 어떤 학생은 우등생이었고 일부는 문제아였다. 어떤 학생은 괴짜였고 일부는 인기 만점이었다. 유형이 없다는 말은 모든 학생이 잠재적 혐의자라는 의미다. 이는 학교에 다니는 한 모두가 분노 살인자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을 끌어낸다.
저자는 일상의 중심인 학교와 직장이 어쩌다 가장 끔찍한 공간이 되었는가에 대해 레이건 이후 자리 잡은 반노동ㆍ친주주 기업 문화를 제시한다. 연방 정부가 우체국에 지원하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첫해인 1983년에 첫 번째 우체국 총격 사건이 일어난 것은 단지 우연일까. 극심한 경쟁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비참한 임금 노예로 전락하는 것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사회는 비단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베라르디는 ‘죽음의 스펙터클’에서 살인에 자살을 포함시켜 이를 전세계적 현상으로 확대한다.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77명이 숨진 2011년 노르웨이 브레이빅 사건, 2012년 ‘다크나이트 라이즈’ 상영관 총기 참사. 저자에 따르면 이 ‘괴물’들을 탄생시킨 토양은 ‘근대라는 약속의 붕괴’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서로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그것이 우리를 어떻게 보호해왔는지, 무엇이 그 약속을 파괴하고 우리를 끝없는 분열과 착취의 장으로 내몰았는지.
그에 따르면 이 사회를 파괴하는 범죄는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세계의 붕괴에 베팅” 중인 월스트리트, 즉 금융자본주의다. “오늘날의 경제질서는 적법성과 도덕적 중립성을 상실하고 명백히 범죄적인 체계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기업 총수와 행정부가 사이코패스 다중살인자들처럼 행동한다고 말하면 과장이리라. 그러나 단언컨대 이 둘은 모두 그들처럼 자살의 아우라, 그리고 니힐리즘적 시각에 흠뻑 젖어 있다.”
저자의 경고는 엄중한 물음으로 돌아온다. “문명이라는 근대적 기획”이 승자독식 이데올로기 앞에 허망하게 무너진 지금, 그는 묻는다. 누가 그 약속을 어겼는가.
황수현 기자 s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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