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리머니로 조국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마라토너 페이사 릴레사(26)가 에티오피아 정부의 회유에도 귀국하지 않겠다고 맞서고 있다.
릴레사는 26일(한국시간) 로이터와 인터뷰에서 “나는 에티오피아 정부를 믿을 수 없다. 에티오피아에 돌아가면 죽거나 투옥된다. 다시는 국제대회에 출전할 수 없다. 나는 에티오피아로 돌아갈 수 없다”고 밝혔다.
리우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릴레사는 결승점을 통과하기 전 두 팔을 엇갈려 ‘X’를 그렸다. 시상식, 기자회견에서도 똑같은 세리머니를 펼쳤다. 에티오피아 정부의 폭력적인 진압을 반대하는 의미로 알려지면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에티오피아 정부는 전세계의 비판을 의식한 듯 일단 몸을 낮췄다. 게타츄 레다 에티오피아 정보부 장관은 BBC 방송과 인터뷰에서 “릴레사의 정치적 견해를 존중하며 그를 체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릴레사를 영웅으로 맞이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릴레사는 이를 철저히 계산된 행동으로 보고 있다.
그는 “(정부가 나를) 처벌하지 않겠다고 한 말은 정말 웃기는 소리”라고 일축하며 “그들은 늘 그랬다. 죽이지 않겠다고 하고 죽였다. 투옥하지 않는다고 하고도 투옥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내 가족과 친척은 이미 감옥에 있다. 몇 명이나 감옥에 갔는지 알 수조차 없다”고 괴로워했다. 릴레사의 친척 중 감옥에 수감된 사람은 없다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릴레사는 예정대로 망명을 시도하며 국외에서 ‘반정부 시위를 이어갈 방침이다. 그는 “반정부 세리머니는 오래 전부터 계획한 것이다. 많은 사람이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을 두길 원했다”며 “난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오로모족을 대표해 메시지를 전할 생각이다”고 날을 세웠다.
에티오피아는 인구 6%에 불과한 티그라이족이 지배층을 형성한다. 인구 25%로 에티오피아 최대 민족인 오로모족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고 최근 에티오피아 정부가 오로모족의 최대 거주지를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편입하기로 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로이터는 “최근 9개월 동안 오로모족 500명 이상이 정부의 무력 진압으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