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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물 간 음식 방송? 요즘 '먹방'이 살아남는 법

입력
2016.08.26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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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 15년간 한국인의 식문화 소비성향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 마크로밀엠브레인의 트렌드모니터가 만 13~59세 남녀 2,500명을 대상으로 2001년과 2016년 한국인의 식문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2001년 응답자의 43.5%가 '먹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고 답했지만 2016년엔 52%로 늘었다.

올해 전체 응답자의 48.9%는 평소 요리 기사나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관심 있게 찾아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1년 35.9%보다 13% 증가한 수치다. 이 같은 변화 사이엔 먹방·쿡방 열풍이 있었다. 2년 사이 방송을 통해 여러 맛집이 뜨면서 업소를 직접 찾아가 SNS나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는 일이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새로운 식문화는 먹방·쿡방 열풍이 한 김 식은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정보가 범람하자 이제 소비자들도 내실 있는 정보를 고르는 눈이 생겼다. 서울에 사는 직장인 이형도(30·가명)씨는 데이트 맛집을 예약할 때 tvN '수요미식회'를 기본 가이드로 삼는다. 먹는 모습, 틀에 박힌 인상평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해당 가게의 역사, 재료나 조리 방법, 서비스, 분위기 등 상세한 평가를 내려 참고할 만하다는 것. 그는 "저마다 제 집이 맛집이라 하니 혼란스러운데, '수요미식회'는 단점까지 솔직하게 얘기해 그만큼 신뢰가 생긴다"며 "방송으로 마음에 드는 맛집을 봐두면 온라인 상의 후기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 후 예약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tvN '수요미식회' 피자편에 참여한 출연자들. '수요미식회' 출연자들은 각자 사비로 선정 맛집에서 식사를 한 후 느낀 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방송인 신동엽, 푸드칼럼니스트 황교익, 가수 별, 방송인 전현무, 요리연구가 홍신애,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헨리. tvN 공식 페이스북 캡처
tvN '수요미식회' 피자편에 참여한 출연자들. '수요미식회' 출연자들은 각자 사비로 선정 맛집에서 식사를 한 후 느낀 점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방송인 신동엽, 푸드칼럼니스트 황교익, 가수 별, 방송인 전현무, 요리연구가 홍신애, 그룹 슈퍼주니어의 멤버 헨리. tvN 공식 페이스북 캡처

'수요미식회'는 구체적인 정보에 목이 마른 소비자의 욕구를 꿰뚫었다. 방송은 지난해 1월 시작했지만, 시청자들의 음식 소비문화가 진화하면서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가 최근에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게스트 별 다양한 평가와 세심한 정보로 진정성을 심어주는 게 비결이다. 일례로 제작진은 게스트에게 출연료 외에 음식값을 따로 제공하지 않는다. 사비를 내거나 식당 앞에서 대기도 하면서 시청자와 똑같은 환경에서 음식을 먹어야 사실적인 평가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게스트가 맛집을 방문해 2~3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요리연구가 홍신애는 재료가 동났다는 이유로 헛걸음해 방문 5회 만에야 방송에서 선정한 맛집의 피자를 맛볼 수 있었다.

'수요미식회'의 이길수 PD는 26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프로그램 기획 단계에서 시청자가 재료의 역사 같은 세밀한 정보까지 관심 있게 볼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고 밝혔다. 이 PD는 "하지만 최근 정확히 알고 먹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면서 "맛집에 대한 불편한 이야기까지 그대로 전하는 방송 형식에 좋은 반응이 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정성에 힘을 실으려는 노력은 최근 먹방의 가장 큰 변화다. 올리브TV '조용한 식사'에서는 게스트들이 자신이 원하는 장소와 메뉴를 지정해 혼밥(혼자 먹는 밥)을 선보인다. 해당 음식에 대한 맛 평가는 일절 하지 않는다. 별다른 대사나 과도한 리액션 없이 그야말로 조용히 식사만 한다. 가타부타 말이 없어도 게스트가 땀을 뻘뻘 흘리는 모습에서 어느 정도 음식의 맛을 예상할 수 있다. 시청자가 음식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형식을 단순화한다는 의도다.

'조용한 식사'의 김관태 PD는 "시각적으로 보기 좋은 음식이 아니라 진짜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맛집에서 픽업해오거나 셰프에게 공수해온다"고 밝히며 "삼겹살을 먹은 배우 이유진은 집에서 각종 도구를 직접 들고 와 더 인상적인 장면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올리브TV '조용한 식사'에 출연한 배우 이유진은 삼겹살을 먹기 위해 집에서 구이용 집게와 가위를 직접 가져왔다. 올리브TV 방송화면 캡처
올리브TV '조용한 식사'에 출연한 배우 이유진은 삼겹살을 먹기 위해 집에서 구이용 집게와 가위를 직접 가져왔다. 올리브TV 방송화면 캡처

다소 식상해진 먹방·쿡방에 새로운 소재를 결합하는 시도도 이어진다. 신선한 분위기를 주고 보다 활용도 높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올리브TV '원나잇 푸드트립'은 여행과 먹방의 결합으로 올여름 여행족들의 환심을 샀다. 일본, 방콕, 대만 등 1박 2일로 떠날 수 있는 여행지를 선정해 최대한 다양한 로컬푸드를 맛보고 평가하는 식이다. 이렇게 소개한 세계 맛집은 SNS, 블로그를 타고 여행 맛집 가이드로 활용된다. 다음달 23일에는 tvN '삼시세끼 고창편'의 후속으로 '먹고자고먹고 쿠닷편'이 방영된다. 요리연구가 백종원과 출연자들이 말레이시아 쿠닷을 여행하며 얻는 현지의 재료로 요리하는 것이 기본 틀이다.

'수요 미식회' 이길수 PD는 먹방·쿡방 형식 변화의 이유를 "음식을 고르는 시청자의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PD는 "저 음식이 왜 맛있고 개인의 입맛에 따라 평가는 어떻게 달라지는지, 나에게 더 잘 맞는 식당은 어딘지 등 소비자들이 고차원적인 고민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이어 "이전 먹방은 시각적으로 현란한 그림을 만드는 데 집중했고 방송 호흡도 빨랐다"며 "최근엔 세심하고 진정성 있는 정보로 시청자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요리연구가 홍신애가 해당 방송에서 "그 가게 사장님이 불친절하다"고 시원하게 폭로한 건 결코 실언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소라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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