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조사 대책회의 마치고 귀가
반바지 차림으로 혼자 차 몰고 나가
은퇴 후 인생 설계하던 양평으로
시신 근처엔 ‘롯데’ 찍힌 우산
26일 검찰 출석을 불과 2시간여 앞두고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에 대해 지인들은 “회사에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었다”고 떠올렸다. 그는 전날 밤 그룹 법무팀과 검찰 조사에 대비한 회의를 가진 것을 제외하면 평소와 다름 없는 24시간을 보낸 것으로 파악된다.
경찰과 롯데 등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25일 오전 8시 서울 중구 소공동 사무실에 출근, 실무팀의 업무 보고를 받았다. 오후 6시 30분 회사를 나선 이 부회장은 그룹 법무팀과 함께 서울 시내 모처에서 다음 날 검찰 조사에 대비한 대책 회의를 가졌다. 회의가 끝난 후 자택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아파트에 도착한 시간은 밤 9시 안팎. 당시 근무를 섰던 경비원은 이 부회장이 우편물을 확인한 뒤 웃는 표정으로 “조금 있으면 부인이 퇴원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의 부인은 이달 초 장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다.
이 부회장은 밤 10시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반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그는 운전기사 없이 회사 차량인 제네시스 EQ 900를 몰고 양평으로 향했다. 양평은 이 부회장이 주말마다 자주 찾던 곳이었다.
이 부회장은 그러나 다음날 오전 7시10분 북한강을 끼고 시야가 탁 트인 경기 양평군 서종면 산책로에서 운동 중이던 주민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비보를 듣고 현장으로 달려온 이 부회장의 친구 강건국 가일미술관장은 “롯데 수사가 있기 전 이 부회장은 부인과 함께 매주 한 두 번 직접 차를 몰고 이곳에 와 식사를 했다”며 “연고는 없지만 은퇴한 후 양평에서 40~50평 단층집을 짓고 살고 싶어해 집을 보러 다녔다”고 안타까워했다.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교회 장로이기도 한 이 부회장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술과 담배는 일절 입에 대지 않고, 골프도 치지 않았다. 강 관장은 “회사에 충성심이 강한 사람이었다”며 “결벽증이라고 할 정도로 남에게 신세를 못 지는 완벽주의자였다”고 회상했다. 롯데 관계자도 “평소 누구한테 부탁을 한 적이 없고, 어려워도 혼자 해결하는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43년 간 롯데에 일생을 바친 이 부회장의 시신 근처에는 ‘롯데’ 마크가 찍힌 진한 고동색 우산이 놓여져 있었다. 이 부회장이 자필로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A4 4장 분량의 유서가 시신과 30m 거리에 주차된 차량에서 발견됐지만 경찰은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공개하지 않았다. 승용차에 블랙박스는 없었다.
이 부회장은 유족의 뜻에 따라 강원 원주에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서 사인 규명을 위한 부검을 받은 후 서울아산병원에 안치될 예정이다. 롯데그룹은 그룹장으로 5일장을 치르겠다고 밝혔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양평=유명식ㆍ이현주 기자 gij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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