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전 처음 뛰어든 우드헐
여성 첫 상원의원 스미스
흑인 페미니스트 치점…
세 여성의 일생 다루며
저자가 말하려는 사람은 클린턴
가장 높은 유리천장 깨기
엘런 피츠패트릭 지음ㆍ김경영 옮김
글항아리 발행ㆍ276쪽ㆍ1만5,000원
“언젠가 여성 공직자가 여성 유권자보다 많아지고, 여성에 대한 대중의 편견이 사라지리라 믿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는 대통령 후보 출마를 선언합니다.” 미국 대통령에 도전했던 첫 여성인 빅토리아 우드헐(1838~1927)의 이 말은 15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다시 말한다 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그간 미국 대통령에 도전한 여성은 200명을 넘었지만 결과는 제로. 미국 대선에서 ‘유리천장에 대한 도전’이라는 말은 늘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으로만 사용돼 왔다.
뉴햄프셔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미국 정치사와 페미니즘의 접점을 끊임없이 탐구해왔던 저자 엘런 피츠패트릭의 신간 ‘가장 높은 유리천장 깨기’는 여기에 주목한다. 이 책은 빅토리아 우드헐을 비롯, 마거릿 체이스 스미스(1897~1995), 셜리 치점(1924~2005) 등 미국 대선에 도전했던 3명의 여성을 균형 있게 다루지만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사람은 힐러리 클린턴이다. “대통령 자리가 아쉽지 않”다는 식의 수사를 사용하고 “힐러리의 두 번째 선거운동이 이번에는 승리로 귀결될 수 있을까”라고 대놓고 묻는다. 그렇다고 불합리함에 분개만 하거나 그들의 도전 정신을 덮어놓고 찬양하는 식은 아니다. 미국 정치사에 능통한 저자는 당시의 언론 보도, 연설문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이 책이 ‘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지 설득한다.
조울증 어머니와 사기꾼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우드헐은 유년 시절 거의 교육을 받지 못했고, 열다섯에 한 결혼마저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우드헐은 고단했던 삶의 활용 방법을 알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정교하게 다듬어 전파했고, 겸손의 미덕 같은 겉치레 대신 자신을 적극 홍보했다. 존 F 케네디가 “강적”이라 표현했던 스미스는 남들은 한 번도 갖기 힘든 최초라는 수식어를 수없이 가졌다. 여성 최초로 자력으로 상원의원이 됐고, 상하원의원을 모두 지냈다. 그들은 ‘흑인 평등’ 문제는 어떻게 하겠냐는 상대의 물음에 “이제는 흑인과 평등해지고 싶어하는 미국 여성들의 열망”(우드헐)을 말하겠노라 답했고, 부통령 후보 정도나 되겠다는 조롱에는 “오직 대통령 선거”(스미스)만이 목표라고 맞받아쳤다.
치점은 흑인과 여성, 그러니까 성별과 인종이라는 “투 스트라이크를 먹은 상태”에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최초로 하원에 입성한 그에겐 늘 ‘흑인이냐 여성이냐’를 택하라는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그러나 치점은 페미니즘과 흑인 투쟁 중 어느 것도 배제하지 않았고, 둘의 가교 역할을 하고자 했다. “미국 대통령에 도전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 아니라 20세기를 살았고 감히 자기 자신으로 살기를 원했던 흑인 여성”으로 기억되기를, “미국의 변화를 위한 촉매제”로 남기를 바랐다.
여성 정치인들에게 ‘성별’은 늘 ‘극복’이나 ‘설명’의 대상이었다. 1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에게는 ‘여성에게만 맹목적’이라거나 그렇지 않으면 ‘여성임에도 여성에 관심이 없다’는 비난이 따라 붙는다. 성별은 늘 부자연스러운 어떤 것으로 존재해왔다. 치점은 1972년 대통령 후보로 나섰던 날 이렇게 외쳤다. “마침내 제가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아직 유리천장은 깨지지 않았다. 이 오랜 여정에 마침표를 찍을 날이 다가온 걸까.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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