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이 바람될 때
폴 칼라니티 지음ㆍ이종인 옮김
흐름출판 발행ㆍ284쪽ㆍ1만4,000원
지난해 가을 여든 넘은 할아버지가 떠났다. 여름에도 춥다며 긴 팔을 고집했고 치매 때문에 아이처럼 행동했다. 그 와중에도 가끔 멀쩡한 정신으로 속내를 비출 때가 있었다. 아직 죽고 싶지 않다, 오래 살고 싶다는 얘기였다. 평생 허리를 꼿꼿하게 펴지 못할 정도로 고생이 많았고 병석에 누워 있던 상황이었음에도 할아버지에게 삶은 여전한 미련이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나마 산뜻하고 아름다운 죽음이란 없을까.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그 질문에 대한 얘기다. 저자 폴 칼라니티는 서른여섯에 악성종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완벽한 죽음을 택했다. 병세가 심각해 삽관을 통한 인공호흡만이 유일한 대안이란 설명을 들었을 때 그는 치료를 거부했다. 의미 없는 연명치료 때문에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할 수 있을 때, 온전한 정신으로 가족들에게 작별인사하기를 택했다. 이런 죽음을 택할 수 있었던 건, 저자의 삶의 이력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생리적인 동시에 영적인’ 인간을 이해하고 싶다는 열망에서 의사가 된다. 예일대 의과대학원을 졸업하고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일하던 저자를 덮친 고민은 삶의 의미였다. 뇌출혈의 가능성을 제거하기 위해 시력 손상을 감수한다거나, 목숨을 건지는 대가로 목소리를 잃게 되는 딜레마를 겪는 환자들을 지켜보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저자의 말대로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서 중요한 건 단순히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쪽이 더 가치가 있는가”였다. 그 가치를 두고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 저자는 안락사를 택했다. 가족들은 저자의 결정에 동의했다. 원고도 채 끝내지 못한 채 저자가 숨지자 아내 루시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루시는 남편의 죽음을 단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남편의 무덤에 놓은 꽃을 사슴이 먹어 치울 때도 슬퍼하지 않는다. 무덤에 놓인 꽃이 동물의 양식이 된다는 것에서 생과 사가 결코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덩어리임을 깨닫기 때문이다. 남편의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관계의 지속이라 생각한다. 영국 소설가 C.S.루이스의 말대로 “사별은 부부애의 중단이 아니라, 신혼여행처럼 그 정상적인 과정 중 하나”인 것이다.
책을 덮으며 귀가 어두웠던 할아버지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돌아가신 뒤에도 당신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는 이상 우리 인연은 계속 될 것이라고 말해둘 것을, 하는 후회가 든다. 사뮈엘 베케트는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우리는 어느 날 죽는다”고 말했다. 덧붙여 저자의 마지막 숨결이 바람이 되어 우리에게로 불어온 것처럼 어떤 호흡으로 살다 죽을지도 생각하게 된다.
변해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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