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워터파크 몰카사건 이후
단속의지 잠깐, 후속조치 없어
온ㆍ오프라인 시장서 여전히 판매
몰카 범죄도 해마다 증가 추세
“온라인 유포 처벌수위 강화해야”
“안경형, 보조배터리형이 제일 잘 나가요. 자연스럽게 촬영할 수 있고 남이 눈치 챌 걱정도 없습니다.”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한 전자기기 판매점 점원은 소형 카메라의 성능을 설명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매대에 진열된 캠코더나 녹음기 말고 몰카(몰래 카메라) 티가 안 나는 제품을 달라”고 주문하자 그는 금세 볼펜, 자동차 키 모양 등 다양한 초소형 카메라를 꺼내 보였다. 이날 들른 인근 상점 10곳 모두 거리낌 없이 20만~40만원대 제품을 소개했다. 전파법상 인증을 받아 단속에 걸릴 염려가 없는 ‘합법 카메라’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국내 유명 워터파크 샤워장과 탈의실을 몰래 촬영한 영상이 유포된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변형 몰카(카메라 형태를 갖추지 않은 초소형 카메라)가 여전히 시중에 범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당시 ‘카메라 형태를 갖추지 않은 제품’을 강력히 단속하겠다고 공언했으나 후속 조치는 전무해 몰카 범죄 근절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온라인에서도 변형 몰카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모자, 스마트폰 케이스 등 다양한 형태의 몰카가 ‘내가 찍는 것을 누구도 모르게 하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최근엔 국내 한 온라인 쇼핑몰이 초소형 카메라 광고 사진 하단에 ‘워터파크 필수! 없으면 섭섭해’라는 문구를 넣었다가 범죄를 조장한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사과하기도 했다.
초소형 카메라 유통에 제약이 사라지면서 몰카 범죄는 꾸준히 적발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서울 소재 한 사립대 학생이 도서관에서 발가락에 테이프로 붙인 ‘액션캠’으로 맞은 편 여학생의 다리를 촬영했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액션캠은 크기가 10㎝도 되지 않아 자유롭게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다. 같은 달 2년 동안 자신의 오피스텔에 소형 몰카를 설치한 뒤 성관계 장면을 촬영해 음란사이트에 유포하고 판매한 정보기술(IT) 업체 임원이 구속되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2011년 1,523건에서 2013년 4,823건, 지난해 7,623건으로 해마다 증가 추세에 있다.
경찰도 워터파크 사건 당시에는 몰카 범죄가 심각하다고 인식해 변형된 카메라의 생산ㆍ유통을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워터파크 내부를 몰래 찍었던 최모(26)씨가 이용한 몰카도 스마트폰 케이스 형태였다. 이런 전자기기는 전파법의 적합성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 단속 근거가 없어 새로운 규제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규제 방안 마련과 관련한 경찰의 구체적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몰카 규제를 담당하는 부서도 없고 법안을 개정하거나 신설하려면 타 부처와의 협조가 필요해 경찰이 단독으로 추진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이 발의한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허가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총포ㆍ도검ㆍ화약류 등 단속법 개정안도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카메라 제조와 유통을 옭아매도 몰카 범죄를 줄이기 어렵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정부가 나서 카메라 판매를 규제할 경우 오히려 몰카 유통이 음성화해 피해를 확산시킬 우려가 큰 탓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처벌 강도를 높이는 등 현실적으로 시행 가능한 사후 조치를 통해 몰카의 위험성과 경각심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장세종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초소형 카메라 판매를 법적으로 규제하면 범죄 행위가 단기간 감소할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며 “정보통신법에 근거해 몰카 영상이 온라인에 유포되는 고리를 차단하고 처벌 수위만 강화해도 범죄 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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