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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올림픽 10-10 구호부터 버리자

입력
2016.08.2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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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손연재가 20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리우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리듬체조 결선에서 4위를 확정 지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C
한국의 손연재가 20일 오전(현지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바하 리우올림픽 경기장에서 열린 리듬체조 결선에서 4위를 확정 지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C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1996년 이후 대한민국은 6번의 올림픽에서 종합순위(금메달 기준) 평균 8.5위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비록 금메달 1개가 은메달 100개에 앞서는 우격다짐식 기준이라 해도, 인구 기준 세계 26위, 영토 넓이론 109위에 불과한 나라로 이쯤이면 스포츠 세계에서도 톱10 안엔 든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법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스포츠로 OECD, G7 같은 그룹을 꾸린다면 한국은 그 안에 들 수 있을까. 우리는 과연 스포츠에서도 ‘선진국’일까.

올해 리우 올림픽에선 유독 스포츠 외의 직업을 가진 각 나라 대표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컸다. 유도의 정보경 선수를 꺾고 우승한 아르헨티나의 의사 선수, 역시 금메달을 딴 미국의 메이크업 아티스트 포환던지기 선수, 모델 겸 사진작가인 육상 선수까지. 결승에서 영국을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우승한 피지의 럭비 대표팀은 호텔 벨보이, 농부, 교도관 등으로 가득했다.

이들에게 눈길이 쏠렸던 건, 사실 우리에겐 낯설고 신기했기 때문일 게다. 죽을 둥 살 둥 모든 걸 쏟아 부어도 세계 무대에 명함을 내밀기 어려운 판에, 본업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금메달이라니. 그냥 무늬만 내건 직업은 아닌지, 우리는 모르는 특별한 훈련법이 있는지 궁금도 하다. 하지만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씩 훈련하고 출근했다는 애널리스트(미국의 펜싱 동메달리스트 게릭 마인하트)나 3개월 휴가를 내고 출전했다는 변호사(그리스 마라톤 대표 미카리스 칼로미리스)들의 면면을 보면 어쨌든 그들은 어엿한 직업인이다.

반면 엘리트 체육으로 연명해 온 우리에겐 그런 선수가 없다. 205명 출전 선수는 거의 전부가 해당 종목에 인생 전부를 걸어 온 스포츠 올인 선수다. 일부 예외는 있겠지만 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다른 가능성을 접은 채 해당 종목에서의 성취가 가져다 줄 결과에 매달려 왔다. 그런 과거를 알기에 금메달 목전에서 좌절한 선수의 눈물에 공감하고, 동메달도 훌륭하다는 위로엔 왠지 모를 서운함이 섞여 있는 지 모르겠다.

‘투 잡’ 선수까진 아니더라도 우리가 말하는 선진국엔 대개 생활체육 문화가 정착해 있다. 인구 대부분이 어릴 때부터 나이 들어서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긴다. 그게 수영이든, 조깅이든, 격투기든, 구기든. 취향이나 의지의 문제지, 돈이 많건 적건 시설을 이용하는 데 큰 차별도 없다.

그런 숱한 일상에서 선수가 발굴된다. 즐기는 가운데서 특별한 능력이 눈에 띄어 선발된 ‘즐기면서 잘 하는 선수’와 ‘어릴 때부터 메달 하나만 바라보고 달려 온’ 한국 선수가 올림픽 무대에서 마주쳤을 때. 성적을 바라는 절실함으론 비교가 안 되겠지만, 결국 극도의 긴장 상태에선 즐기는 자가 쫓기는 자를 앞서는 걸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박태환, 김연아의 후계자가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취미로든, 전문 선수로든 수십, 수백만 동호인 가운데 대표를 고르는 시스템과, 어쩌다 튀어나온 특출한 재능을 애지중지 길러내는 시스템에선 두번째, 세번째 선수로 갈수록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한국과 일본 야구를 비교할 때 흔히 하는 말이 있다. ‘국가대표 1군의 실력은 엇비슷하다. 하지만 비슷한 수준의 국가대표 1.5군을 한국은 1팀 만들까 말까라면, 일본은 10팀 이상 꾸릴 수 있다.’ 이게 인프라, 저변의 차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다가온다. 홈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니 가뜩이나 구호가 난무할 것이다. 제발 대회마다 반복되는 ‘10-10’(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 식의 구호부터 버리자. 한국선수가 딴 금메달이 참가국 중 몇 번째로 많은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공감 안 되는 국민소득 3만달러보다 차라리 저녁이 있는 삶에 더 관심이 가는 것처럼, 메달 순위 10위보다 스포츠 인프라 10위가 우리의 삶엔 훨씬 중요할 것이다. 지긋지긋한 헬조선을 탈피하는 길은 스포츠에도 있다.

김용식 경제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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