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 이전 30년을 기념해 그 동안 수장고에서 잠들어있던 소장품을 대대적으로 공개하는 전시를 열었다. 300여 작가의 560여점 작품이 8개 전시실과 중앙홀, 회랑 등 과천관 전관을 가득 채웠다. 개관 이후 단일 전시에 전시장을 통째로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잠들었던 소장품을 깨우는 것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기존 작품을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그 동안 관람객이 몰랐던 뒷이야기도 공개한다. 몇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과거 작품에 영감을 받아 만든 작가의 신작도 함께 배치됐다. 자칫 ‘소문난 잔치’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무색하게 전시장은 풍성했다.
‘달은, 차고, 이지러진다’라는 특별전 제목처럼 전시는 제작부터 소멸과 재탄생에 이르는 작품의 생애를 3개 주제(해석ㆍ순환ㆍ발견)로 집중 조명한다. 과천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1,003대의 모니터로 구성된 백남준의 ‘다다익선’(1988)을 여기에 영감 받아 제작한 이승택 작가의 ‘떫은 밧줄’(2016)과 함께 배치하며 작품 해석을 확장시킨다. 서로 다른 분야의 작가 및 기획자, 연구자들에게 소장품을 기반으로 한 신작을 의뢰하는 방식으로 ‘해석’ 파트에서는 작품을 둘러싼 다양한 소통 방식을 찾는다.
전시장 3층의 ‘발견’ 파트는 미술관 소장 이후 긴 시간 동안 전시되지 못했거나 혹은 단 한 번도 관람객과 만날 수 없었던 작품을 보여주자는 발상에서 시작했다. 작가 개인의 손을 떠나 고유번호를 부여 받고 수장고에 고립됐던 작품들이 밖으로 나왔다. 소장품은 제작 당시 혹은 예전에 선보였던 방식과는 다르게 관람객 앞에 모습을 보인다. 작가의 또 다른 작품들과 함께 배치돼 작업을 심층 이해하도록 돕거나 작업세계가 어떻게 발전해가는지 보여주는 식이다.
제작 당시와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첨가돼 일부 변형되기도 하고, 과거의 작품이 현재의 작가와 만나 낳은 또 다른 작업이 함께 전시되기도 한다. 내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작가로 선정된 코디 최 등 11명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된 이곳 섹션은 마치 작은 개인전의 집합 같다는 느낌을 준다. 미술관이 관람객을 위한 공간임과 동시에 작가를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회화 작품의 뒷면을 전면에 내거는 등 개별 작품 자체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순환’ 섹션과 과천관의 30년 역사를 돌아보는 아카이브전 ‘기억의 공존’, 향후 미술관 건축물의 변형 가능성을 모색하는 ‘상상의 항해’ 등 다양한 전시가 전시장 구석구석을 채운다. 퍼포먼스와 관련 교육도 전시 내내 이뤄진다.
소장품을 일대일로 짝지어 배치하는 작위적인 구성이 아쉬운 코너도 있다. 막달레나 아바카노비치의 설치작품 ‘안드로진과 수레바퀴’(1988)를 임응식의 사진작품 ‘노점수레’(1950)와 함께 비교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표 소장품 중 엄선한 37점으로 구성한 이 코너는 미술관 스스로 “뻔한 전시”라 표현하듯 엉성한 측면이 없지 않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으로 이전하면서 비로소 현대 미술관의 3요소라 할 수 있는 건물ㆍ전문인력ㆍ소장품을 갖추게 됐다. 현재 미술관 소장품은 7,840여 점으로 과천 이전 후 수집한 것이 전체의 74%(5,834점)에 해당한다. 1년을 준비한 이번 전시는 과천 30주년을 스스로 축하하는 자리임과 동시에 외국 유명 미술관과 달리 상설관을 갖추지 않은 미술관이 향후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모색하는 전시이기도 하다.
강승완 학예연구실장이 “두고두고 봐야 하는 전시”라고 표현하듯 전시장을 하루에 둘러보는 것은 무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관람객 반응이 뜨겁다. 개최 당일인 19일 관람객만 700여 명이다. 강 실장은 “향후 계속 이런 형태의 전시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월 12일까지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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