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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내 연금보험은 무사할까

입력
2016.08.2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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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ㆍ저금리 보험산업에 직격탄

알리안츠 등 외국계 생보사 탈출 러시

생보 750조원 자산은 ‘제2 안전망’

# 결혼 직후인 1992년 초 지인 권유로 교보생명의 ‘21세기 장수연금보험’에 가입했다. 당시 나이 30세. 아주 까마득한 미래인 만 55세부터 연금을 주는 상품이니 ‘그때가 오기는 하는 걸까’ 싶어 마뜩지 않았다. 그래도 지인 도와주는 셈치고 월 5만1,600원씩 10년간 총 619만원을 부었다. 세월은 쏜살같이 흘러 1년4개월 뒤면 어느덧 만 55세. 2018년 초부터 죽을 때까지 매년 150만원의 연금이 나온다. 만 75세부터는 간호연금 150만원이 더해진다. 만일 95세까지 산다면 총 수령액은 9,000만원. 톡톡히 남는 장사다.

# 1980년대 한국경제는 두 자릿수 성장률을 보였고 노태우정부(1988~92년)에서도 연평균 8.6% 성장했다. 스펙 없이도 취직이 잘 됐고 결혼하면 고민 없이 애를 낳던 시절이었다. 1992, 93년 임신한 두 아이를 위해 교육보험에 차례로 가입했다. 당시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3%선. 목돈 1,000만원을 은행에 맡기면 3년 뒤 1,500만원을 돌려줬다. 그러니 확정금리 연 7.5%로 설계된 교육보험이 성에 찰 리 없었지만 지인의 권유를 뿌리치진 못했다. 둘째에게 들어간 보험료는 월 13만5,000원씩 15년간 총 2,430만원. 그간 학자금으로 매년 40만~480만원을 받았고 내후년엔 1,400만원의 자립지원금도 나온다. 총 수령액 4,080만원.

생명보험은 판매 시점의 시장금리를 반영한 보험료를 받고 먼 미래에 확정된 보험금을 주는 장기 금융상품이다. 대개 판매 시점부터 10~30년이 지나야 보험금을 지급하므로 생존기간과 금리 흐름을 제대로 예측하는 게 중요하다. 장수연금에 가입한 92년 30세 남성의 기대여명(앞으로 더 생존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간)은 43년. 그런데 통계청 생명표를 보니, 지난해 53세 남성 기대여명은 29년이다. 장수연금 설계 당시 예측에 비해 10년가량 더 사는 셈이다. 수명연장 속도로 볼 때 실제 생존기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1%대 저금리도 20여년 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80년대 초 17~19%였던 1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90년대 중반 8~10%로 반토막 나더니 지금은 1.3~1.6% 수준이다. 국내 생보사의 보험료 적립금 444조원 중 역(逆)마진이 생기는 확정금리형 상품은 197조원으로 45%나 된다.

생보사들이 연금보험 설계 때는 장수 리스크를, 교육보험은 금리 리스크를 간과한 셈이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 고령화와 장기 불황에 따른 초저금리를 누가 예상할 수 있었으랴. 금리가 낮으면 보험사의 투자운용수익률도 떨어진다. 더욱이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기존보험 해지는 늘어나고 신규 계약은 계속 줄고 있다. 보험금을 굴려서 버는 돈은 해마다 줄어드는데 가입자에게 줘야 할 이자는 비싸니 수익성이 좋을 리 없다. 요즘 생보사 주가가 연일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는 이유다.

우리보다 20년 앞서 저금리가 시작된 일본은 18개 생보사 중 닛산생명을 비롯한 7개사가 파산했다. 미국 생보사들도 초저금리 환경을 맞아 고수익ㆍ고위험 자산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가 신용위험 경고음이 울리는 상황이다. 국내서도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 온 외국계 생보사들이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 올해 초 자산규모 16조8,000억원의 생보업계 11위 알리안츠생명이 35억원이라는 헐값에 매각됐고 PCA생명도 매물로 나왔다.

우리나라는 공적 시혜제도의 전통이 극히 취약하다. 복지에 대한 시민의식이 낮아 국가가 사회적 위험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보편적 서비스를 실행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회적 합의기반을 언제 만들어 낼 수 있을지도 기약이 없다. 이런 가운데 보유계약 4,463만 건에 총자산 750조원 규모인 국내 생명보험은 가계 생활안정과 노후복지에 중추 역할을 해 온 제2의 사회안전망이다. 한국은 2040년 OECD에서 가장 늙은 국가가 된다. 생보업계 체력이 더 고갈되기 전에 정책당국이 세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나저나 죽을 때까지 장수연금을 무사히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고재학 논설위원 goindol@hankookilbo.com

[고재학국장02] 고재학 논설위원 /2016-01-15(한국일보)/2016-01-15(한국일보)
[고재학국장02] 고재학 논설위원 /2016-01-15(한국일보)/2016-01-15(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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