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 vs 산업효과 팽팽히 맞서... “좀더 신중히 판단하자”
정부가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의 한국 정밀지도 반출 요구에 대한 결정을 연기했다.
국토교통부 산하기관인 국토지리정보원은 24일 ‘측량성과(지도) 국외 반출협의체’ 2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이 결정했다. 협의체는 해당 건에 대한 처리 기한을 오는 11월 23일까지 60일 연장하고, 추가적인 심의를 거쳐 반출 허용 여부를 최종 결정할 계획이다. 이날 협의체에는 국토지리정보원과 국방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총 8개 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앞서 지난 6월 구글은 국토지리정보원에 국내 지도의 반출을 요구하는 신청서를 제출했다. 구글은 2007년부터 정부에 지도 반출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이처럼 공식 절차를 밟은 적은 처음이다. 구글이 반출을 신청한 5,000대 1의 대축적 초정밀 지도는 오차 범위 3m 이내로 국내 지형을 정확하게 담고 있다. 초정밀지도를 반출해 전세계 8개국에 위치한 서버에 저장한 후 국내에서도 고객에게 다양한 지도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게 구글의 입장이다.
당초 관계에서는 정부가 이날 회의에서 구글의 지도반출 요구에 ‘불허’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불과 하루 이틀 전까지만 해도 협의체에 참여한 정부 부처를 중심으로 “국가 안보에 대한 고려가 최우선”이라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그간 국정원과 국방부 등은 지도 반출 시 한반도의 군사 정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구글의 위성사진에 오차 범위 3m 이내의 초정밀 지도 데이터까지 더해지면서 유사시 적의 미사일 정밀 타격 가능성이 높아지는 등 안보 위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줄곧 제기해왔다.
그러나 이날 회의에서는 안보 논리 만이 아니라 산업 파급효과, 한미 간 통상 마찰 등 다각적인 측면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한다. 지도 반출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시각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국내 지도제작 및 서비스 업계에서는 구글이 반출한 무료 지도에 해외 지도와 위성을 통해 입수한 정밀 데이터를 더해 지도의 완성도를 높이고, 이를 ‘안드로이드’ 등 구글의 모바일 플랫폼에 장착한다면 국내 지도 시장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반면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지도 반출이 허용되면 우리나라가 구글 혁신 서비스의 ‘테스트베드’(실험장)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신중히 따져 보고, 구글 측에도 충분한 설명 기회를 제공하자는 의견이 반영됐다”고 전했다.
불허 결정 시 미국의 통상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정부의 ‘신중 모드’에 힘을 싣는 요인이다. 실제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8일 우리나라 정부 부처와 비공개 영상회의를 열어 “구글의 지도데이터 반출 요구를 승인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인사는 “USTR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다”고 전했다.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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