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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부수적 피해 혹은 미필적 고의

입력
2016.08.2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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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ㆍ11 테러에 대한 응징으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테러의 주범, 오사마 빈 라덴 체포를 위해 아프가니스탄 공습을 단행한다. 수 차례 공습을 허탕치고, 대신 병원 환자와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에 대해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그것은 ‘부수적 피해’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베트남 전쟁, 중남미에서 벌어진 수많은 정부군과 반정부군의 전투에서 민간인 피해가 작지 않았다. 비정규전의 경우에는 이런 부수적 피해가 불가피한 면이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부수적 피해는 미필적 고의이며, 그걸 은폐하는 말장난에 불과한 경우가 허다하다. 2차 세계대전 말기 미ㆍ영 연합군의 독일 공습, 그리고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북한지역 무차별 폭격은 미필적 고의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무차별 폭격을 한 당사국이 패전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법적 심판대에 오른 일은 없었다. 그냥 부수적 피해라고 변명한다.

이번 북한 외교관의 탈출과 한국 입국은 대북 제재의 성과에 목말라하던 박근혜 정부에 커다란 낭보다. 천안함 사건 이후 남한정부는 대북 제재를 열심히 해왔다. 특히 현 정부는 지난 1월 북한 4차 핵실험에 대한 추가 제재에 열과 성을 다하며, 8월이 지나면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해왔다. 성과를 거두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태영호 공사의 입국에 누구보다 박 대통령이 기뻐했을 것이다. 대북 제재가 이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ㆍ영 공조에 의한 그의 탈출은 남한 정부가 개입했다는 의미여서 북한이 이를 외교문제로 삼을 수 있다. 이건 우리 입장에서는 별문제가 아니겠지만 재외 북한 외교관들과 그 가족들에 대한 감시, 나아가 무역 교류 학술 등 다양한 목적으로 외국을 오가는 북한 사람들에 대한 통제를 초래할 것이다. 그에 따라 북한과 국제사회의 교류를 통한 북한의 개방이 축소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은 부수적 피해에 해당한다.

한편 박근혜 정부가 추진하는 전방위적이고 강력한 제재가 북한 주민의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을 더 힘들게 할 가능성은 미필적 고의에 해당할 수 있다. 제재가 민간인, 민간경제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오래전부터 지적되어 왔던 터다. 그래서 수많은 유엔의 대북 결의문에도 제재를 북한주민들의 생활과 민간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스마트하게 전개할 것을 권유하고, 그에 따라 인도적 지원, 경제협력, 민간교류는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남한 민간단체의 대북 지원과 교류를 억제하고 있다. 물론 국제적 기준에 턱없이 못 미치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 형편은 대부분 북한 정권의 책임이다. 다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제재는 그 나머지 부분의 책임을 면하기 힘들 것이다.

한국 주도의 제재가 강력해 보이지만 북ㆍ중 국경지대는 뻥 뚫려있다. 북한 주민들의 생명을 이어주는 곳이고, 북한과 외부세계가 소통하는 장이다. 북한 주민은 남한 정권을 동족을 벼랑으로 내몬 원수로 사상 교육을 받을 것이다. 안보지상주의자들은 평화와 협력을 사치라고 힐난하고 있다. 두 분단권력이 연출하는 체제 대결은 한반도 주민들에게 부수적 피해인가, 미필적 고의인가.

현 정부가 강력한 대북 제재로 북한 정권 붕괴를 기도한다면 그것을 비판할 수 있어도, 대통령 입장에서는 통치권 행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접근으로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안보정책에 대한 문민통제를 유보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 그건 미필적 고의를 넘어 위헌적 처사다. 동시에 제재 일변도의 대북 압박은 북한 주민의 생존을 악화시키고 북한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만 강화한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스마트한 제재로 부수적 피해를 줄이든지, 미필적 고의를 사전 차단할 관계 전환을 추진할 일이다. 잔여 임기 동안 박근혜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지다.

서보혁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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