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권고 거부한 정부
현재 해외영주권자는 대상서 제외
인권위는 ‘차별’ 판단해 시정 권고
“거주 지속성 불분명… 수용 어려워”
“제공해야” “무임승차” 반응도 갈려
건보도 보험료 3개월만 내면 혜택
외국인 먹튀 논란 등 뜨거운 감자
국내에 거주하는 재외국민 유아에게 보육료와 유아학비를 무상지원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시정 권고를 정부가 거부했다. 복지 혜택이 갈수록 확대되며 재원을 둘러싼 갈등도 치열한 가운데, 수혜대상을 납세자 중심으로 제한할 것인지 재외국민까지 보편적으로 확대할 것인지 논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23일 인권위에 따르면 인권위 차별시정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오모(76)씨가 낸 진정을 바탕으로 국내에 살면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다니는 재외국민 유아도 보육료 및 유아학비 지원 대상에 포함하라고 보건복지부와 교육부에 권고했다. 오씨의 손자(6)는 일본 영주권을 갖고 있지만 2012년부터 한국에 들어와 국적을 취득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부여 받았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해외 영주권자는 보육료ㆍ양육수당 지원하지 않고 있어 오씨 손자는 어린이집 보육료를 지원받지 못했다. 인권위 조사결과 영유아보육법(어린이집 대상) 및 유아교육법(유치원 대상)에는 ‘국내에 거주하는 재외국민 유아를 지원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명시적 규정이 없었다. 복지부는 또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아동이 해외로 출국할 경우 90일이 지나야 보육료 지원을 중단하고 있다. 아동의 국내 거주 여부와 상관 없이 일정 기간 보육료를 지원하는 것이 적법하다는 의미다. 인권위는 이를 근거로 “재외국민 유아가 지원대상에서 배제된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거주의 지속성이 불분명한 재외국민에게 보육료를 지급하는 것은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어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해외체류 한국 국적아동 1만 6,000여명에게 55억원 상당의 양육수당이 지급된 것도 재정 낭비라는 지적이 나왔었다”며 “해외영주권자 자녀까지 지원 대상이 되면 논란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도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재외국민의 수급자격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조율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 혜택을 놓고도 같은 논란이 있어왔다. 재외국민이나 외국인은 국내에서 3개월간 보험료를 내면 지역가입자로 건보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짧은 기간 동안 건보료를 내고 내국인과 같은 건보 혜택을 받고 출국을 하는 경우가 많아 이른바 먹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국내에 입국해 건보진료를 받은 재외국민(외국인 포함)은 2013년 9만4,849명으로, 2009년(4만2,232명)에 비해 2.2배나 늘었다.
반면 유럽의 복지 선진국들 경우에는 외국인을 포함한 모든 자국 내 거주자들에게 국민과 동등한 복지 혜택을 주는 일이 드물지 않다. 일부에서는 인도적 차원에서 우리나라 정부도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아이들의 양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병수 국제아동인권센터 사무국장은 “한국민들도 자녀를 해외에 데려가면 그 나라 교육 혜택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며 “재외국민은 물론 이주민과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도 차별 없는 보육을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불법체류자 자녀에게 의무적으로 초등 교육을 시키는 법안도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되기도 했다.
제한된 복지재원을 감안해 ‘무임승차’에 엄격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양미선 육아정책연구소 부연구위원은 “아동이 부모를 따라 해외에 나갈 때는 보육료 지원이 중단된다”며 “계속 국내에 살면서 세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가정에만 혜택을 주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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