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벤토테네에서 정상회담
브렉시트 이후 첫 회담 주목
극단주의 테러 공동대응 합의
EU ‘빅3’지만 국내 정치 혼란에
경제정책도 엇갈려 마찰 예상돼
유럽연합(EU)의 3대 강국인 독일ㆍ프랑스ㆍ이탈리아 정상이 브렉시트(영국의 EU탈퇴) 이후 유럽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해 모였다. 세 정상은 현안으로 떠오른 극단주의 테러에 맞서는 공동전선 구축에 합의하고 “유럽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영국이 떠나지만 EU의 결속에는 문제가 없다는 시그널을 보여준 자리인 셈이다. 하지만 해외 언론은 각국 내부의 정치적 상황과 세 나라간 입장차 등을 지적하며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한목소리 내기에 어려움을 겪는 EU 주요국들의 문제와 3국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는 2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인근 벤토테네섬에서 만났다. 이들은 공동기자회견에서 공동 안보 증강과 각국 정보기관 간의 정보 교환 강화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니스 트럭 테러와 북부 성당 테러, 독일 뮌헨 쇼핑몰 테러 등 최근 이어진 극단주의 테러에 대한 공동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회의는 브렉시트 투표 직후인 6월 27일 긴급회동 이후 세 정상이 만난 첫 회담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를 의식한 듯 세 정상은 EU가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렌치 총리는 “브렉시트 후 많은 이들이 EU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이슬람 극단주의와의 싸움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국가주의로의 후퇴로 이어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고 메르켈 총리도 “(EU는) 역사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 탄생했다”며 “도전이 거칠수록 함께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담장소를 벤토테네섬으로 선정한 것도 ‘EU 힘 싣기’의 일환이다. ‘EU 창설의 아버지’로 꼽히는 알티에로 스피넬리의 무덤이 벤토테네섬에 있기 때문이다. 2차대전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에 맞선 정치범들이 수감된 이 섬에서 스피넬리는 1941년 동료 에르네스토 로시와 ‘벤토테네 선언’을 공동 집필했다. ‘벤토테네 선언’은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국가주의에 맞서기 위한 유럽 공동체 창설을 촉구한 문건으로 ‘EU 정신’의 상징 중 하나로 꼽힌다. 세 정상은 회담에 앞서 스피넬리의 무덤을 찾아 EU를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 꽃다발을 헌화했다.
이처럼 이날 회담의 상징적인 의미가 강조된 반면 구체적인 정책에 이르는 합의 사항이 공개되지는 않았다. 세 정상 앞에는 브렉시트 협상이나 늘어나는 이민자 대응책, 경제 위기 대책 등 과제가 산적해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세 나라가) 다른 국가를 대표해서 결정을 내릴 수는 없다. 다만 주도적인 역할은 맡을 것”이라며 내달 슬로바키아 브라티슬라바에서 열리는 EU 정상회담에서 추가 협상이 전개될 것을 암시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들은 EU의 ‘빅3’인 세 나라 지도자 모두 국내 정치에서 곤란한 상황에 처해 유럽을 적극적으로 주도할 여유가 없을 것이라 예측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 내 연이은 테러로 난민 개방 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 대응 실패와 높은 실업률 때문에 내년 대선을 앞두고 낮은 지지율에 허덕이고 있으며 렌치 총리는 11월로 예정된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 총리직을 걸었기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날 가능성도 있다. 경제분야에서는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경기부양을 위한 확장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반면 EU의 사실상 지도국인 독일은 긴축재정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어 3국 간 마찰도 예상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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