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 무산시 대안 없어 국회 설득에만 주력
여권서 ‘추경 포기’ 거론되지만 현실성 낮아
추경 무산시 국회 단계서 직접 예산안 수정할 듯
“추경은 타이밍이 생명인데… 답답함을 넘어 비통한 심정이다.”(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여야의 ‘강대 강’ 대결 탓에 처리 기한(22일)을 넘긴 채 지연되자, 국회만 바라보며 기다리는 정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추경 통과를 전제로 내년 예산안을 짜야 하는 불안정한 상황을 맞았기 때문이다.
칼자루는 결국 국회가 쥐고 있는 만큼 총력을 다해 국회를 설득해서 추경안을 가능한 빨리 통과시킨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추경안 자체가 국회에서 폐기되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추경 폐기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고 추가 대응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예산안 두 개 준비” 플랜B 거론
23일 기재부에 따르면 국가재정법상 내년 정부 예산안의 국회제출 기한은 다음달 2일이다. 기재부 예산실은 이미 11조원 규모의 추경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전제로, 정부 예산안을 준비 중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국회에서 추경 처리가 무산된다면, 추경이 빠진 예산안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다. 구조조정 관련 사업 중에는 올해 추경에는 포함되고 내년 본예산에서는 빠진 사업도 많아서, 본예산 제출 후 추경이 무산되면 구조조정 사업이 양쪽 예산에서 다 빠지게 되는 기이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새누리당 등 정치권 일각에서는 “추경 국면에서 야당에게 질질 끌려 다니느니 아예 올해 추경사업을 내년 본예산에 반영하자”는 ‘플랜B’ 방안까지 제시됐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예산실의 한 관계자는 “숫자 하나를 건드리면 전체 예산안이 흔들리게 된다”며 “열흘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본예산 만들기도 빠듯한데 플랜B까지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국회를 설득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기재부의 판단이다. 예산실 고위 관계자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국회로 출근한다”며 “플랜B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추경 무산시 어떤 일 벌어지나
기재부는 추경이 최종 무산되면 하반기에 추경 규모만큼 돈이 덜 풀리게 되고, 결국 성장동력에 부정적 영향을 줘 연간 경제성장률의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유 부총리는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3분기에는 개별소비세 인하종료, 구조조정 가시화, 김영란법 시행 등 경기하방 요인이 있다”며 “이제라도 국회에서 조기에 추경안을 처리해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경기 걱정 외에도 정부의 골치를 아프게 하는 부분이 있다. 기재부는 이번 추경 대치 국면으로 인해 정부 제출 예산안이 완전히 무산되는 나쁜 전례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향후 정부가 국회를 상대로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추경이 최종 무산되더라도 일단 추경을 전제로 짠 내년 예산안을 국회로 보낸 다음, 추경이 무산되면 그때 가서 국회에서 직접 사업을 반영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집행 시기가 몇 달 늦춰진다는 문제는 있지만, 본예산 제출 후 국회 심의 과정에서 추경사업을 내년 예산에 포함시켜 내년에 조기 집행하는 것도 차선책”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영창 기자 anti092@hankookilbo.com
세종=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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