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 사람들을 제외한 외국인들도 주역으로 데뷔하기 힘들었습니다. 더욱이 동양인이 그들의 오페라에 주역을 맡는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죠.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조수미(54)는 꼭 30년 전 데뷔 무대를 이렇게 회상했다. 조수미가 존타 국제 콩쿠르 우승을 시작으로 유럽 주요 국제대회를 석권한 것은 1986년 전후. 그 해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의 베르디 극장에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에 질다 역으로 데뷔했다.
조수미가 무대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기념 앨범 ‘라 프리마돈나’를 23일 유니버설뮤직에서 발매하고, 같은 제목의 기념공연을 연다. 25일 충주를 시작으로 9월 3일까지 서울, 군산, 창원, 안양 등을 돈다. 앨범과 공연 모두 그의 대표 레퍼토리를 담았다. 앨범에는 세계적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과 데카에서 녹음한 주요 오페라의 아리아, 가곡 등 32곡을 두 장의 CD에 나눠 담았다. 공연에서는 오페라 ‘마농레스코’의 ‘웃음의 아리아’를 비롯해 30년 전 데뷔 작품인 ‘리골레토’의 ‘그리운 이름이여’, ‘호프만의 이야기’ 중 ‘인형의 노래’ 등 아리아를 비롯해 한국 가곡 등 다양한 스타일의 곡을 들려준다.
조수미는 음반사 유니버설 뮤직과 인터뷰에서 “상상도 못했던 많은 성과들을 30년 동안 이룰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다”며 “정말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수미는 데뷔 2년 뒤인 1988년 거장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1908∼89)과의 오디션이 알려지면서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카라얀은 1989년 베르디의 ‘가면무도회’를 녹음하며 조수미를 오스카 역에 캐스팅했다. 플라시도 도밍고가 주역을 맡은 이 음반은 카라얀 최후의 오페라 녹음이라는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카라얀은 조수미를 가리켜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소프라노”라고 극찬했다.
자신을 운명론자라고 소개한 조수미는 “카라얀이 오디션에 와달라고 연락했을 때 놀랐고, 오디션을 보고 카라얀을 만났을 때도 떨리긴 했지만 굉장히 친근하게 다가왔다”며 “마치 가족 중에 한 사람을 본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또 “목소리 범위가 너무 높고 목을 혹사할 수 있기 때문에 밤의 여왕 역할을 많이 하지 말고, 음악이라는 팽팽한 줄을 놓아서 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충고를 들었다”고도 밝혔다. 듀엣을 노래했던 성악가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가수로는 그는 플라시도 도밍고를 꼽으며 “여러 장르나 음악에 대해 열려 있는 모습, 고음이 약하다 보니깐 늘 힘들어하지만 항상 자신의 음역을 찾아서 열심히 해내는 걸 볼 때 놀라웠다”고 말했다.
“(요즘 후배들은)혼자 공부 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나가기보다는 유튜브나 관련 자료들을 많이 참조하는 것 같아서요. 그런 면이 안타까워요. 자신이 먼저 악보를 보고 자신의 음악을 어느 정도 만들고 난 뒤에 레퍼런스용 영상은 참고로만 보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빨리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는데 성악도 빠른 지름길은 없어요. 천천히 짚어가며 자신의 길을 가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윤주 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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