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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슬픈 좀비의 공화국

입력
2016.08.2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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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을 본다. 찬찬히 들여다보기 전에, 손이 급히 얼굴을 문질러 댄다. 헤어드라이어로 머릿결을 만질 때는 꽤 용의주도하다. 하루하루 삭아가는 시간의 급류에 몸을 맡기기 직전, 내 시선은 잠시 멈추어 선다.

아침 지하철 공기는 주변 사람들의 악의로 가득하다. 왠지 모르게 화가 나 있는 듯하다는 느낌은, 지나치게 순진하다. ‘앞으론 차를 타고 다녀야지’라고, 가만히 혼자서 뇌까린다. 적절한 격리는 인생의 시선을 보다 쾌적한 곳에 머무르게 한다.

광화문 광장 한 켠에선, 메아리처럼 웅웅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화가 난 비명 같기도 하고, 우는 듯 웃는 것 같기도 하다. 디지털의 비트(bit)로 포장된 웅성거림은, 수많은 아우성의 이유를 구획 지어 타임라인에 옮겨다 준다.

회사에 갖춰진 최첨단의 사회 모니터링 시스템도, 이 전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명확히 알려주지는 못한다. 지금은 2016년일 수도 있고, 사실은 2216년에 가까울 수도 있다. 오래된 아카이브(archive)는 좀비 바이러스가 서울역에서 창궐하여 부산까지 퍼졌을지도 모른다고 암시하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이 가상의 로그인 상태인지, 현실의 오프 상태인지도 불확실하다.

현실인지 악몽일지 모를 세월이 흐르면서, 몇몇 생존자 구역만 살아남았다. 각각의 구역에는 캡틴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여전히 좀비가 하나의 집단이며, 오래 전 한 명의 슈퍼감염자가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이라 굳게 믿는다.

몇 번 좀비들과 직접 맞닥뜨려 본 나는, 보다 정확한 진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그들에게도 말해줘야겠다. “캡틴, 좀비는 바이러스 때문에 생긴 게 아닙니다. 외부의 바이러스가 침투해서 갑자기 인간의 중추신경계가 파괴되었다는 학설은 잘못된 도그마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그렇게 양육되고, 훈련되었습니다. 우리가 잘못 발을 내디딘 이곳이 바로 좀비 공장이라고요.”

그럴 리가…. 그래서는 안 된다. 정녕 이 땅 곳곳이 원래부터 ‘좀비 공장’이라면, 좀비를 증오하는 우리에게도 그들 유전자(DNA)의 일부가 있을 것이고, 수많은 관계 속에 언제 발현될지도 모른다. “악녀의 목을 쳐라! 승리의 그 날까지!” 내 말을 외면한 캡틴이 갑자기 목청을 돋운다. 주위의 사람들이 핏대를 세우며 동조한다. 눈알과 실핏줄이 부풀어 오르는 그 얼굴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도망치듯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온다.

비현실적으로 평온한 집안에서, 아이가 달려 나와 아빠 다리를 꼭 잡고 책을 읽어 달라고 조른다. 아이가 들고 온 책은 오즈의 마법사. “뇌가 없는 허수아비는 지혜를 원했어요. 양철 나무꾼은 따뜻한 심장을 원했지요. 겁쟁이 사자는 용기를 갖길 바랐어요. … 허수아비는 도로시와 친구들을 위해 지혜를 짜냈고 양철 나무꾼은 온 마음을 다해 나무를 잘랐죠. 겁쟁이 사자는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어흥’ 하고 괴물과 싸웠어요. … 마침내 만난 오즈의 마법사는 허수아비에게 왕겨로 만든 뇌를, 양철 나무꾼에게 비단으로 만든 심장을 주고 겁쟁이 사자에게는 용기가 솟는 약을 마시게 했어요. 모두가 소원을 이루게 되어 기쁘고 행복했어요. 그런데 사실 오즈의 마법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답니다.”

예정된 몰락의 아침이 밝았다. 세수하던 손을 멈추고, 거울 속의 얼굴을 마주 본다. 좀비는 생각보다 난폭하지 않고, 몰락은 할리우드 영화처럼 스펙타클하지 않았다. 친구를 위한 지혜와 사랑과 용기를 진작에 외면한 우리가 좀비였고, 우리의 삶은 코드화된 공간에 차갑게 흘러내리는 이진수의 기호처럼 당분간 이어질 터였다. 자기 안에 갇힌 욕망의 기억 속에 이리저리 배회하다가, 하나의 신호에 질주하듯 몰려들게 될 우리가 ‘슬픈 좀비’였다.

김도훈 아르스프락시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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