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2006년 ‘연예인’ 마지막 방송을 하던 날이었어요. (양)현석이 형이 빅뱅의 ‘라라라’ 무대를 봐달라고 했죠. ‘쟤네가 앞으로 다 죽일 거야’라고 했는데, 10년 전 그 말이 이렇게 현실이 됐네요.”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 서울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보이그룹 빅뱅 데뷔 10주년 공연. 게스트로 무대에 올라 6만5,000여명이 몰린 경기장을 둘러 보던 가수 싸이는 빅뱅의 성장을 놀라워했다.
“대단하다”는 싸이의 말처럼 2006년 8월 데뷔한 빅뱅은 K팝 한류를 이끄는 가장 큰 브랜드가 됐다. 빅뱅은 지난달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낸 유명인사 100인’에 54위로 이름을 올렸다. 세계를 누비며 공연 수익으로 연간 4,400만달러(495억원)를 벌어들인 덕분이다. 미국의 인기그룹 마룬5(3,500만달러)보다도 높은 순위다. 빅뱅은 힙합을 기본으로 댄스 음악적 요소를 결합해 음악적 차별화와 대중화에 성공했다. 직접 곡을 만들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이 기존 K팝 그룹과 가장 다른 점이다. 그 ‘아이돌 혁명’의 중심에 빅뱅의 전 앨범 제작을 맡고, 10년 동안 팀을 이끌어 온 리더 지드래곤(28ㆍ본명 권지용)이 있다.
기획형에서 자립형으로 진화한 아이돌
지드래곤도 처음엔 ‘기획형 아이돌’이었다. 2001년 YG엔터테인먼트(YG) 연습생으로 들어가 랩과 춤에 집중하던 지드래곤에게 작사와 작곡에 눈을 뜨게 해 준 이는 양현석 YG 대표 프로듀서였다. YG 관계자에 따르면 양현석은 지드래곤이 연습생 생활을 하던 6년 동안 일주일에 한 곡씩 작사와 작곡 숙제를 냈다. 지드래곤은 빅뱅의 자서전인 ‘세상에 너를 소리쳐’에서 “이때부터 거리의 간판과 영화 등 주변의 사소한 것까지 곡에 대한 발상으로 연결 시키는 버릇이 생겼다”고 고백했다. 오랜 연습과 YG 내부 창작 시스템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지드래곤은 데뷔 후 자신의 음악적인 색을 점점 진하게 내기 시작하며 ‘자립형 아이돌’로 성장한다.
“1992년 서태지와아이들 데뷔와 성공 후 g.o.d나 H.O.T처럼 기획사 내에서 길러지던 아이돌에서 자기 음악을 하는 창작형 아이돌 시대를 연 효시”(강일권 음악평론가)가 지드래곤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음저협)에 따르면 지드래곤이 저작권자로 등록이 돼 있는 노래는 178곡(22일 기준)이다. 음저협이 2013년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드래곤이 같은 해 받아간 저작권료는 7억9,000만원이었고, 이후에도 최소 연간 4억 이상은 받지 않겠느냐는 게 음악 관계자들의 추정이다.
지드래곤이 주목 받는 건 파격적이면서도 대중적인 기획 능력이다. 소위 폼 잡기 좋아하는 힙합 아이돌이면서도 팀의 친근함을 위해 구성진 트로트도 만들 줄 안다. 팀의 멤버인 대성의 구수한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만든 ‘날 봐 귀순’(2014)이 대표적이다. ‘판타스틱 베이비’(2012)도 히트곡 ‘거짓말’(2007) 이후 편하게 춤추며 즐길 수 있는 댄스곡이 필요하다는 고민에서 만든 곡이다. 지드래곤은 무대 의상도 때론 직접 디자인을 한다. 빅뱅의 의상 등 스타일링을 총괄하는 지은 YG 이사는 “지드래곤은 ‘이런 느낌을 내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걸 잘 안다”며 “스타일링 감각이 동물적인 수준”이라고 했다. 음악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재미를 주는 방법을 아는 아이돌이 지드래곤이다.
현대미술가와도 협업하는 청춘의 아이콘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최근 2~3년 사이 지드래곤의 행보다.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도 연 그는 국내외 현대미술작가와 협업하며 창작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또 다른 청춘스타인 배우 유아인이 창작그룹 ‘스튜디오 콘크리트’를 만들어 카메라 밖에서 예술적 영감을 끊임없이 얻고 있는 것과 비슷한 행보다. 박준우 음악평론가는 “지드래곤이 제주도에 카페 ‘몽상드애월’이란 공간을 만들어 DJ를 섭외해 파티도 하는 등 자신이 갖고 있는 문화적 관심사를 풀어 내는 방식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박 평론가는 “홍대 DJ들 파티에도 가는 걸로 알고 있는 데, 그렇게 만든 회사 밖 인프라로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내놓을 지가 궁금하다”고도 했다.
자신만 돋보여선 팀을 이끌 수 없다. 연약한 외모와 달리 지드래곤은 책임감이 투철하고, 소신이 뚜렷해 지인들 사이 전형적인 리더형 인물로 통한다. 빅뱅에게 노래를 지도했던 최원석 보컬트레이너는 “빅뱅 멤버들이 연습생 때 한창 ‘소몰이 창법’이 유행해 멤버들도 보컬 훈련을 그런 식으로 받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그는 “지드래곤이 ‘우린 트렌디한 음악을 해야 하는데 발라드 연습은 아닌 것 같다’며 수업 내용을 바꿔야 하는 게 아니냐고 건의 한 적이 있다”며 “속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제대로 놀 줄 아는 자유분방한 아이돌
빅뱅의 자유분방한 이미지는 지드래곤의 영향이 크다. 그는 가면을 쓰고 놀이공원에 몰래 놀러 가는 ‘괴짜’다. 스타는 ‘시대의 얼굴’이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드래곤을 “‘스웨그(Swag) 문화’의 아이콘”으로 봤다. 힙합에서 뮤지션이 건들거리면서 허세를 부리는 것을 뜻하는 말로, 틀에 얽매이지 않고 권위에 도전하는 본능적인 자유로움 혹은 개성을 뜻한다. 록 스타의 반항적인 이미지와 비슷하지만, 드러내 놓고 자신을 자랑한다는 점에선 결이 사뭇 다르다.
지드래곤은 2010년 낸 솔로 앨범 ‘원 오브 어 카인드’ 타이틀곡 ‘크레용’에서 스웨그란 표현을 처음 썼고, ‘원 오브 어 카인드’에선 “뭐만 했다 하면 난리라니까”라며 눈치보지 않고 으스댄다.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청년들은 현실에서 찾을 수 없는 자존감을 지드래곤의 노래를 통해 대리만족하며 그의 노래를 즐긴다. 지드래곤은 ‘삐딱하게’(2013)를 부르며 반항아 이미지를 강화하고, “찹쌀떡~궁합이”(빅뱅 ‘배배’ㆍ2015)라고 아슬아슬하게 퇴폐와 유희를 오가며 재미를 주기도 한다. “칼군무를 추며 획일화되고 기획사에 길들여져 때론 모범생 같은 아이돌과 다른 지드래곤의 매력이자 빅뱅의 매력”(지혜원 대중문화평론가)이다. 지드래곤도 이런 점을 잘 아는 눈치다. 그는 “속된 말로 ‘날티’ 나는 걸 좋아한다”며 “대중들이 그런 나의 부분을 귀엽게 보는 것 같고, 나한테 잘 맞는 매력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드래곤은 철이 들지 않기 위해 왼쪽 옆구리에 ‘영원히 젊게’라는 뜻의 ‘Forever young’이란 문신을 새겼다. 지드래곤은 기획사란 ‘공장’에서 자랐지만, 스스로 그 틀을 깬 ‘21세기형 아티스트’다. 생산품이 아닌 생산자가 된 아이돌의 미래는 무엇일까. 지드래곤은 최근 미국 방송사 CNN의 ‘토크 아시아’(9월 방송)에 출연해 “난 항상 내일이 오늘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며 “빅뱅의 미래도 그럴 것이라 본다. 매일 새로워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양승준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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